오로지 Church

퇴근 길 할아버지들의 종교싸움

디디대장 2009. 4. 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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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퇴근길은 4호선 당고개행이다. 서울 변두리라는 말입니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서있을 곳도 없었다. 마침 노약자석 쪽에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이동해서 책을 보려고 하는데 점잖아 보이는 노신사 둘이서 다정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좋은 옷에 깨끗한 인상 마치 사우나장이라도 둘이 갔다 온 것처럼 말끔하다.  처음에는 원래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다. 소곤소곤 대화를 하더니 그 중간 이야기는 책 읽는 것 때문에 못 들었고 양복 입은 노신사가 "내 교회 잘 안 나가요" 그러는 거다 그 말에 쳐다보았다. 딱 보아도 교회 잘 나가는 노신사였다.  

 그런데 옆에 할아버지가 교인들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말씀대로 안 산다고 이야기를 한다. 조금 불쾌하게 느낀 노신사 표정을 보더니 이 할아버지 노신사를 놀리기 시작한다. 

 "교인들은 건들면 때로 달려든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하고 자꾸 약을 올리는 거다.  

 결국 노신사 참지 못하고 언성이 높아졌다. 결국 할아버지 신나서 지하철 승객들 보고 보라고 쉽게 화내는 게 기독인들이라고  더 놀린다. 도저히 못 참겠는지 노신사 옆사람과 자리를 바꿔 앉았는데 계속 깐쭉 깐죽 놀리는 거다.

 결국 두 손을 쥐고 일어선 노신사 주변의 사람들이 점잖게 말렸다. "그러지 마세요. 노인들이 지하철에서 싸우면 뭐가 되냐고" 또 다른 서있던 노신사가 말리니 좀 조용해지나 했는데 이젠 놀리던 할아버지 열 받았다.

 "나이도 어린 게 네가 뭐.., " 이런 말로 더 약을 올리는 거다. 그만하자던 노신사 결국 또 분노해서 막 주먹이 오가려는 순간 60대로 보이는 한분이 그 노신사를 모시고 조금 떨어진 말이 안 들리는 곳으로 역지로 끌고 갔다.  

 나도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 안에서 다른 기독인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그리고 보니 교회 안에서도 종교 행위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우린 싸움닭들 인것 같다.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우린 지고 못 산다.  절대 서로에게 안 진다. 서로 맞다고 끝까지 싸운다.  나의 경우 어린 것이 권면을 한다고 설치고 다녀서 도저히 그 꼴을 못 보고 막말을 해 버린 것이다  "너나 잘하라고.." 이거 스타일 완전히 구겨졌다. 이런 말이 나올 때는 난 완전히 망가진 거다. 사과를 받았지만 이건 내가 진 거다. 사과를 안 받더라도 참았어야 했다.  

 사실 기독인을 약 올린 할아버지 말이 맞다. 하지만 기독인들이 바르게 살지 않아서 이런 욕을 먹는 것은 아니라 기대치가 높아서 그 수준에 못 올라가 있을 때 이런 수모를 당하는거다.

 우린 종교 행위인 교회 나가고 헌금 잘 내면 모든걸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성경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 우린 그렇게 듣는다.

 왜냐하면 양 떼로 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로 키워질 때는 규칙을 아주 잘 지키고 훈련되지만 일단 전쟁에 나가서는 10시에 취침하고 6시에 기상하면 안 되는 거다. 9시에 아침 먹고, 12시에 점심 먹고, 6시에 저녁 먹는 전시는 없는 거다.  

 교회에서는 교인 훈련소를 졸업 안 시키기 때문이다. 절대 병사로 거듭나게 훈련하지 않고 철조망에 모아 놓은 양 떼로 키운다. 그래서 철조망을 벗어나면 지 맘대로 인거다. 그게 오늘날 기독인의 현주소인 거다.

 전쟁터에서는 배 고프면 먹고 기회 있을 때 먹는 거다. 그런데 우린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만 배워서 지하철 노신사처럼 지는 척도 못하는 거다. "맞아요 기독인인 제가 부끄럽군요. 용서하세요."라고 말했다면 졌지만 이긴 경기였다.  

 이 글을 읽는 기독인 여러분 우린 양 떼로 키워지면 안 될것 같다. 제발 철없는 양 떼로 철조망 밖에 나가지 말자. 교회다닌는 게 죄인 취급 받는 것 처럼 되면 안되는 거다. 왜냐하면 교회 다니나 안 다니냐의 기준은 원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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