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까칠한 기독인 있나요?
직장에 혹시 까칠한 교인이 있나요? 아니면 교회는 다니는데 악마처럼 행동하는 상사가 있던가요? 아니면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재수 없던 그 사람 교회 다니던가요? 그럼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교회 다니냐고요? 아니 교회 다니면 착해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요? 그래서 오늘은 까칠한 기독인이 왜 존재하는지 이야기를 할까 한다.
왜 교회에 까칠한 사람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일을 완벽하게 해 내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일중독형 사람이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주변을 아주 불안하게 만든다. 일 하기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직장에서 하던 식으로 업무 처리하듯 교회 일을 하려고 한다. 아는 게 그것뿐이면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일하듯이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직장에서 우수한 업적을 내고 있는 기대 주거나 촉망받는 직원일 것이다. 항상 칭찬만 받고 일해와서 교회일도 잘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교회를 불안하게 하고 상처를 주고 업적을 자랑한다
그런데 교회는 일하기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니다. 일을 잘하면 좋지만 그 일 과정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종교인이 첫 번째 주의해야 할 일이다.
완벽주의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에 불안감을 준다.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성공해야 하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꼭 이번에 저걸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극복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담당한 책임감 때문에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성공했다고 자화자찬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성취감에 빠져서 그럼 그렇지 내가 당연히 일은 잘하지 할 것이다.
그런데 교회 입장에서 보면 잘한 것 하나도 없는 멍청이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바보다. 열심에 빠진 이기주의자 일 뿐이다. 마태복음 18: 6~7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교회 일은 목적이 성공이 아니고 나의 능력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단지 자신은 도구일 뿐 주님께서 하시게 한발 뒤로 물러나서 주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난 도구로서의 역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면 열심히 일해 놓고 욕을 먹는 게 교회 일인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이 깔끔하게 완벽하게 처리되었다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믿음의 눈으로는 그건 자랑 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이 안 하거나 못하는 일을 해 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다. 교회는 일하기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보인 단체다. 내가 열심을 낸 일에 하나님을 찬양하였는가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열심을 낸 거라면 0점이다. 또 겉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 어떤 한 사람을 마음을 힘들게 했어도 0점이다. 그렇게 일하려면 일하지 않는 게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이해 못 하고 자신이 일 중독에 빠져서 다른 사람의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지적질하고 괴롭히는 말을 하고 다닌다면 이건 정말 최악이다. 피해를 주면서 이룬 성과를 자랑하면서 남들도 자기처럼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창피한 것도 모른다면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는 필요 없는 사람이 된다.
결국 이 사람 주변의 사람이 다 떠난 후에 반성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떠난 사람들을 욕하면서 계속 불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잔소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완벽주의는 불만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자신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완벽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불안감을 불만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그럼 불만은 가진 사람은 다 완벽주의자냐 아니다. 불만을 말하는 건 어떤 경유는 좋은 일 일 때도 있다. 예의를 가지고 개선하자는 건의인 경우는 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불만이 완벽주의에서 나온다면 문제라는 말이다. 저 사람은 저것밖에 못할까 항상 불만을 가진다. 칭찬할 줄 모른다. 마음도 급하다. 만족이 없으니 자신도 괴롭고 남도 괴롭힌다. 그러면서도 지금 악마처럼 자신이 행동하는 걸 모르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는 말을 해주어도 못 듣는다.
교회 안에 완벽주의자를 조심하자
교회 안에서 일 중심적인 완벽주의를 만난다면 그가 목사이건 장로이건 믿음이 없는 자라고 보면 맞다. 자기를 위해 열심을 내는 형편없는 수준의 사람이다. 처음 교회 일을 할 때 이런 무식함에 빠진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다.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정도다. 그러니 누가 세상일을 하듯이 회사일을 하듯이 열심을 낸다면 알려주어야 한다. 교회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정중하게 말해주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던지 교회 안에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성도에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사랑,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런 사랑이 우리를 힘나게 하고 열정적으로 만들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안된다 해도 기다리고 더디 행하는 건 못해서가 아니라 기다려 주는 사랑이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마치 자가용을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빨리 못 달려서가 아니라 갑자기 서야 할 때를 대비해서 천천히 가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는 흉기이고 여러 사람을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흉기가 된다. 신앙에서도 멈추어서 주님의 뜻인가 물어보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확신이 없다면 멈춰야 한다.
학교 다닐 때 줄 맞추어서 운동장 구보한 적 있을 것이다. 맨 앞줄은 어떻게 달려야 하냐면. 천천히 달려야 한다. 그래야 대열이 제모습을 잃지 않고 박자를 맞출 수 있다. 발만 맞추면 점점 빨리 달리게 된다. 왜냐하면 보통 맨 앞줄이 키가 큰 경우라 박자만 맞추면 맨 앞줄은 다리도 길고 보폭도 길어서 점점 맨뒤줄보다 빨라진다. 그럼 중간부터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랍니다.
대열이 무너지면 맨 앞줄 잘못 없다고 할 수 없다. 발맞추었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한다면 참 답답할 노릇이다. 균형을 무너지게 안 하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중간부터 무너질까 그건 중간에 있는 사람은 앞줄만 보고 따라가는 사람과 뒷줄을 생각해서 좀 천천히 달려주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맨뒤에 몇 명이 뒤쳐지는 걸 돌아본 중간자가 있는가 하면 앞사람만 쫓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줄만 천천히 달려주면 모두가 대열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니 제발 겸손하게 행동하자.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모두 다 같이 가는 게 목적이다. 누가 실수를 했다면 지켜보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지적하고 잔소리부터 하면 안 된다. 뭔 일을 시켰으면 틀리게 해도 아무 소리 하지 말자. 다음에는 다른 일을 잘하는 일을 시키자
※ 아래는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까칠해 지는 교인 이야기다.
https://odydy311.tistory.com/5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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