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 성령의 열매를 맺는 쉬운 방법
오늘은 성탄절 아침이다. 교회는 분주하게 아침부터 성탄감사 예배를 준비한다. 찬양대는 일찍 와서 준비 중이고 각자 봉사를 맡은 곳에서 정말 열심히 무보수로 일한다. 그래서 이런 분들에게는 봉사의 기쁨이 보인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교회라는 장소가 특별하기 때문이고 이런 교회를 섬기는 것이 기쁨이기 때문이다. 돈으로 못 섬기면 봉사로라도 섬기려는 마음 때문에 이런 분들에게는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
반면에 돈 받고 일하는 목사, 전도사, 직원은 휴일에 근무하는 상황이라 매우 마음이 힘들다. 휴일에 근무했다고 다른 날 쉬게 해주지도 않는다. 명백한 노동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항의하지 않는 것은 교회에서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치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가 새로 온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뭘 뜻하냐면 이득이나 손해를 따지지 않던 사람들이 손해와 이득을 따지는 거래관계로 바뀌었다는 걸 말한다. 이건 상대인 담임목사가 이들을 거래의 관계로 보고 행동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거래의 관계로 변한 사람들은 휴일에 근무했으면 쉬게 해 줘야지 그게 정의고 법인데 왜 못 쉬게 하냐 이러는 것이다.
거래가 아닌 관계의 마음에는 이득을 안 따진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연인관계 등 모든 관계에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금전적인 손해를 보지만 전혀 손해라고 느끼지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분이 예배드리는 걸 좋아하실 것 같고 예배하고 교회를 섬기는 걸 좋아하실 것 같아서다. 그리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도 따르고 싶지만 이건 좀 잘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과 관계를 위한 것이다. 상대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나도 기쁨이 생기는 것이 관계가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새로 온 목사는 이걸 모른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계산적인 것이 아니라 손해 보더라도 잘해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내가 손해를 보지만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기쁨을 받아 자신도 기쁨이 생기다는 원리를 모르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새로 온 목사는 자기를 돕는 사람들(부목사, 전도사, 직원)과 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과 이 모양이라면 따져 볼 것도 없다.
새로 목사가 온 후 교회에 기쁨이 사라졌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담임목사의 이중적 행동과 말을 보고 듣고 있다. 진심이 아닌 가식적인 연기자 일뿐이다.
하지만 목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아마도 저 나이 먹도록 저 모양이면 가능성은 없다. 그냥 평생 목사 쇼하다 죽을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진짜 믿는 사람은 저런 행동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산에 밝을 수가 없다.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이 항상 보인다. 삶이 친절이고 매사에 배려와 사랑이 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행, 성실, 온유, 절제라고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열매를 추구한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과 행동은 거래가 아닌 관계를 맺을 때 쉬워지고 가능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과 관계도 필요하지만 더 쉽게는 인간관계로도 가능해지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기독인들은 잘 모른다. 작은 사랑으로 단지 계산하지 않고 베푸는 마음만으로도 성령의 열매가 보인다는 걸 모른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반대로 가르쳤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지면 모든 게 다 해결되고 다 좋아지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생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충성하라고 가르친다. 교회에 열심히 내는 방법은 새벽기도 금요 철야 수요예배 등 주일은 물론이고 예배에 모두 참여하고 헌신 봉사하고 헌금도 잘 내고 뭐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고 최고라고 가르쳐 왔다. 그 결과 우리가 평생 믿음 생활하면서 교회 다녀도 성령의 열매가 안 맺히는 이상한 경험을 해 왔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나 교회와 이해득실을 따지는 생각이 들어오면 공로의식에 빠지게 된다. 이런 더러운 경험으로는 세상의 빛이나 소금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과가 아주 나쁘다.
그래서 오히려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다가 나중에 지치고 힘들어지면 이상하게 내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하면서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공로의식에 빠지는 것이다.
이 계산이 결국 그동안 믿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나님과 관계까지도 의심되고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틀린 방법을 가르침 받았고 틀린 방법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교회중심으로 사는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아주 간단하게 이것이 해결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예배고 내가 교회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 이것은 인본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라는 말이다. 교회사에서는 인간은 악한 존재이고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해 왔기 때문에 아마도 주도적인 신앙생활을 절대로 허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왜 교회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다 설명해 줄게 '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할 것이다. 계속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면서 살으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개인의 힘이 강해질수록 교회의 권위와 힘은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의 기득권 세력은 당연히 이런 것에 저항하는 무리부터 제거하고 조직적으로 방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가르쳐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변에 내가 계산하지 않고 맺은 인간관계가 몇 명인지 헤아려 보자
그게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이렇게 좋은 인간관계가 많아질수록 풍성해지고 좋아질 수밖에 없다. 없어서 베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면 베풀면서 계산하지 않고 돌려받으려 하지 않고 그냥 주는 마음이 많으면 된다. 지금 한두 명이라도 괜찮다. 여러분이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더욱 하나님과의 관계가 두꺼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이걸 교회에서는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요한복음 15:5) 예수님을 통한 관계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을 하니 그냥 저절로 열매들이 마구 열리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겨우 교회만 나오면서 겨우 봉사 좀 하면서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었다면 그다음 노력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관계가 좋다고 주장하면서 열매가 왜 안 열리나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 추가할 일은 거래가 아닌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다.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연습이 실전이 될 때까지 말이다. 거래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사랑과 기쁨으로 호의와 선행을 베풀기 연습 말이다. 몸에 배어서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말이다.
교회에 봉사하고 참여하는 일은 계산하지 않으면서 왜 다른 일에는 그렇게 계산적이고 까칠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잔인할 만큼 이기적이냐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교회에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되고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어디서나 똑 같이 잘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말이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 중에 안 믿는 가족이건 믿는 가족이건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질타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편협된 사고로 교회에만 충성봉사하면 된다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안 믿는 가족과의 갈등이 오면 마귀 소리라고 치부하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깨지게 하는 나쁜 목사들이 많았다. 이건 하나님의 방법도 아니고 바른 가르침도 아니다. 가족과의 관계까지 깨지게 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좋게 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한 교회에 종교인은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 그리스도인으로 향기 나는 사람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는 인간관계부터 잘 맺어가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도 계산적인지 않은 인간관계 말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열매들이 맺어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 희락(기쁨), 화평(평화), 오래 참음(인내), 자비(호의), 양선(선행), 충성(성실), 온유, 절재 이런 것들 말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절제하며 기뻐하며 성실하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고 온유하며 호의적이며 선행을 향하며 화평케 하는 것이 내 삶에 나타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계명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글이 너무 빙빙 돌고 어렵게 써진 것 같다. 아마도 나도 오랫동안 교회에만 충성하라고 배워왔고 기존의 신자들이 그렇게만 배워와서 그걸 깨고 설명하려니 너무 힘든 것 같다.
성탄절 이브 저녁 지하철역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나에게 '선생님,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나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난 이렇게 들었다. '목사님,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내가 목사처럼 보였나 싶었다. 아니 잘못 들었겠지 하면서 생각했다. 주머니에 현금이 있었더라면 아니면 가까운 식당에 모시고 가서 저녁을 먹게 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면서 지하철에 올랐다.
그리고 오래전 내가 저런 분들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식당에 모시고 가서 돈을 지불했을 때 그 식당주인이 나에게 던진 말이 기억이 났다. "진짜시군요~" 뭔 말인가 하고 다시 뭐라고요? 하니 " 지금 것 교회분들이 이렇게 대하는걸 처음 보아서요"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다. 여러분은 진짜 그리스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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