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골로새서 3장 12~14절)
사랑받는 자처럼..., 용서..., 사랑을 더하라
실제로 살다 보면 용서를 해야 할 찬스에 욕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당연한 거다 용서가 필요한 곳에는 죄가 있는 거다. 당연히 욕먹을 짓만 하니까 욕하게 되는 거다.
기독인이라도 별 수 없다. 물론 성경에 "욕 하지 마"라고 안 쓰여 있다. 그게 너무 기본이라 쓸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런데 "사랑을 받은 자"라면 용서하고 사랑하란다. 다시 말해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은 엉터리 믿는 자라는 소리인가?
요즘 기독교계에 "빤스 목사"가 나타나 막말과 욕을 한다. 이건 뭐 수준을 논할 가치도 없는 거다. 그 교회 교인도 볼 것 같은 거다. 속한 교단에서 목사직 파면되었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한국에서 교단 하나를 만든 건지 다른 교단으로 받아주는 교단으로 옮겨 버린 건지 아직도 목사란다. 아~ 뭐 이런 거지 같은 경우가 있나 싶다. 그래도 이들을 한번 용서해 보겠다.
도저히..., 안된다. 왜 안될까?
위의 성경 말씀을 보면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라고 쓰여있다. 용서는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피차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보다. ㅋㅋㅋ
하나님(신)의 사랑은 일방적이지 인데 뭔 소리냐고 할 거다. 하지만 "예수 믿어야 구원이다". 무조건 피동적으로 신이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거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넓고 큰 사랑이라 해도 동시에 우리에게 선택권이 존재한다는 거다.
어찌 보면 주고 받는 관계가 존재하는 거다. 물론 더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신)이시다. 연애해 보았으면 알겠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손해 보는 거다. 기꺼이 그렇게 사랑하신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용서를 받은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신다.
그래 다시 빤스 목사를 용서해 보자
안된다. 또 왜 안될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나서 가능한가 보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아 어렵다 빤스 목사 용서하기 포기해야겠다.
사랑은 못해도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은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그를 용서한들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이것도 빤스 목사도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이 되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기가 될 때 가능할 듯하다.
만약 이런 모습이 빤스 목사에게 전혀 없다면 그의 정체성은 뭘까?
빤스 목사가 뭐냐 하는 분에게는 뭐 누구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은 빤스 목사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용서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글이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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