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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교회가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을까?

by 야야곰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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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종교는, 기독교는 윤리 효과가 있지만 기독교는 윤리 운동이 아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자세는 '나는 맞는데 너는 틀렸다'에서 출발하는 교만이다.


 평생을 교회 생활을 하고 믿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은 변화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성령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성령으로 변했을까 생각해 보면 착각이 아닐까 겸손히 생각하게 된다. 그냥 원래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난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을 싫어하는 성격이고 남을 속이는 것도 싫어한다.

 

 아브라함의 업적은 제국을 다스리지 않았고 군대를 지휘하거너 영토를 정복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예언을 하거나 교회를 세우지도 않았다. 질타하거나 가르치거나 분개하거나 손가락질하지도 않았으나 그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믿음의 조상으로 숭배되어 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것이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라는 아주 소박한 사람이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한 자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변혁을 위한 것이 아니고 변화시켜야 할 의무조차 없다.  복음으로 세상을 볼 줄 알고 세상의 가치관에 도전하고 이러한 노력이 세상과 다른 삶과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있는가!  이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말은 온유로 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행해야 하는 이유다. 

 

예수 믿고 사는 것은 인내가 있어야 하는 삶이다. 하나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교회에 적응 잘하는 삶이 아니다. 교회 열심히 출석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이런 1차원적 행동으로 세상은 우리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오히려 조롱하고 무시한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이 이런 취급을 받는 이유는 조급함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급하니 인내도 없고 기다림도 없고 사랑도 없게 되는 것이다. 

 

과격한 기독교 

과격한 성도, 과격한 교회, 과격한 목사, 과격한 집단 이 모든 과격함은 전혀 기독교적인 사상과 정신이없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신앙과 정치적으로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변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고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하는 게 먼저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남도 안 변한다. 내가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변화시켜 주실 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믿음

믿음은 그래서 오래 걸리는 일이다. 평생 알아가도 잘 모르다고 말하는 게 맞다. 하나님을 어찌 인간이 다 알 수 있겠냔 말이다. 보여주신 것만 아는 것이다. 나도 전에는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고 교만했다. 그리고 가르치는 일도 오래 했었다. 그리고 남을 변화시키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오래 믿음생활을 하고 뒤 돌아보니 창피함이 밀려온다. 부끄럽다.

 

그래서 이젠 남을 가르치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족한 게 인간이고 미련한 게 인간이고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인생이니 지켜보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도해 주고 기다려 주는 어른으로 늙어가야 하는 이유다. 

 

■ 아래 동영상 내용을 정리하고 쓴 글이다.

https://youtu.be/521T_BekAOY?si=SrFQ8FxCWfTmW7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