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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회

교회를 다니나 안 다니나 별 차이가 안 나게 살고계시죠?

by 야야곰 2025.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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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에 들어섰고 이 길이 너무 나에게 잘 맞았던 것 같다. 내가 죄인이라는 걸 알아서 좋았고 또 예수님을 통한 구원도 좋았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아주 교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내면의 성장이 멈춰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왜일까 매주 좋은 설교를 듣고 예수 믿는 성도의 삶에 대해서 듣는데 말이다. 기도를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조차도 별 차이 없다. 주변을 보아도 다 나처럼 멈추어 있을 뿐이다.

 

 사실 이 고민은 청년부 리더일 때부터 했었다. 왜 교회에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사나워지고 남을 평가하고 낮게 여기고 무시하고 무례할까 하는데서 출발했다. 더 착해지고 유연해지고 여유 있어지고 오래 참고 기다리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교회 안의 어른들, 장로, 권사, 집사, 목사, 전도사등 모두 같았다.

 

 한 10년 전에는 원인이 완벽주의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앞에서 완벽해지려 하다 보니 잘 안 되는 자기를 발견하기보다는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문에 먼저 들어오면서 교만해지는 것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의 티끌이 보이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열심히 못하나 하는 교만과 권위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인을 이렇게 판단해 버리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게 문제다. 이유는 자신의 이 흉악해진 모습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교회에서 가르쳐준 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망가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인정 못한다. 따라서 고칠 수도 없다.

 

 이 비극적 진단은 결국 치료도 안되니 방법을 모르는 교회는 기존하던 대로 교회에만 유익한 방법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개인 잘못이지 교회가 어떻게 다 책임져'하면서 주일성수, 교회봉사, 헌금만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교회가 성도에게 책임을 회피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이기적인 성도를 난든게 교회이기 때문이다. 언제 이기적이 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교회중심적 설교를 한 결과가 집단 이기주의를 만들고 완벽주의자를 만들고 성도가 성도를 비난하게 만들었다는 걸 모르면 안된다.

 

그래서 요즘은 다 기도와 예배의 문제라고 결론 내렸다. 기도와 예배가 문제라니 말이 되냐 할 것이다. 그럼 설명을 해보겠다.

 

 기도는 복 받는 뭔 요술램프로 설명하는 목사와 삶다로  예배 따로 사는 목사가 할 수 있는 설교는 이론만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설교는 마치 요리의 레시피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아주 쉽다고 따라 해 보라고 설명하지만 막상 주방에 서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처럼 주일예배의 설교가 단계적 실천 불가능하고 추상적이다 보니 막상 사람들 앞에 서면 그냥 하던 대로 습관대로 레스피고 뭐고 설교를 뭘 들었건 전에 하던 대로 자기 맘대로 하기 때문이다. 이건 설교를 하는 목사도 설교대로 못 산다. 자기도 못살면서 성도에게 살라고 하는 것은 책으로 배운 것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앞으로 가지 못하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매주 이런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설교는 머리를 끄덕일 수도 있고 큰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삶은 전혀 안 변하는 괴물 성도를 만든다. 

 

 우리는 주일 예배 참석하면 큰 의무는 다한 완벽한 신자라고 착각한다. 여기에 헌금까지 하면 아주 잘난 척까지 하고 새벽기도까지 나오면 오만방자 교만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목사는 성경 읽고 설교 준비까지 하니 자기가 뭐 대단한 존재라도 그 된 것처럼 매사 역겨운 소리도 잘한다. 이런 교만은 권위적으로 사람을 만든다. 차가운 인간을 만든다. 권위와 종교가 결함 하면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

 

 해결방법이 이것도 없어 보일 것이다. 아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비법은 중심만 옮기면 된다.

 

기도는 자기 성찰을 담아하고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보는 시간으로 만들면 된다. 자랑하듯 남위해 중보기도 같은 짓하며 길게 기도하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게 보란 말이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은가? 죄인 주제에.., 자기 성찰이 없는 기도 몇십 년 하면 사람의 뇌가 고장 난다.

 

 주일 예배 설교 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내가 아니다. 폼 딱 잡고 멋진 옷 입고 앉아있다 우아하게 집으로 가기 위해 시설 좋은 큰 교회 골라서 등록하고 다니고 있다면 냄새나는 자신을 좀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 겉모습들이 자신의 내면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냥 냄새나는 인간쓰레기가 자신이고 남들이 뒤에서 욕하기 때문에 좋은 직책에 앉아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자기 성찰 없는 예배는 참석했다 해도 예배드린 게 아니다.

 

교회가 성도가 세상사람들의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억울한 일도 아니고 불쌍한 일도 아니다. 아주 당연한 결과다. 그걸 모르는 것은 교회 다니는 우리들 뿐이다.

 우리 수준이 하나님보시기에도 믿지 않는 사람들 보기에도 쓰레기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 이건 목사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성도가 변한다. 이렇게 망해도 난 손해 없다고 생각하는 목사가 있다면 한국교회는 곧 아주 쪼그라질 것이다.

 


아래는 이런 바뀌지 않는 부분이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쓴 글의 링크다.

인간은 왜 바뀌지 않는가?

 

인간은 왜 바뀌지 않는가?

서론 인간은 왜 바뀌지 않는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속에는 끊임없이 변화와 성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아침 출근길에 들리는 라디오 강연, 잠들기 전 읽는 한 페이지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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