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고 연말이 되니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친구가 있다. 한번 만나자는 것이다. 잘 살고 있냐는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고 사실 어려운 일이 왜 없겠냐만은 그런 말을 해서 뭐 하겠냐 싶은 것이다. 또다시 오랜만에 만나면 또 잘 사는구나 할 친구에게 말이다.
그리고 보면 가족 왜에 직장 일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지만 가족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고만고민하다 사표를 던지거나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이직하고 있을 것이다.
친구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보면 반갑고 어디에선가 나처럼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살아 남는 과정이니 말이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만 있어도 감사할 일이다. 항상 응원해 주고 잘되기를 바라고 건강하기를 바라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에게는 우리는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을까?
성경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고 가난한 자를 부유케 하신다고 말까지 있으니 더욱 우리는 모든걸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복과 화를 선포하시다(마 5:1-12)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런데 오늘 출근길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하나님이 오래된 친구처럼 또는 가족처럼 항상 날 잘되게 되길 바라기만도 족하다 싶었다. 왜냐하면 40년간 하나님께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안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기했다. '하나님 안 주시지만 괜찮습니다. 이 만큼 사는 것도 다행스럽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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