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rch

비 대면 시대의 예배의 참된 의미를 찾아서

Didy Leader 2021. 2. 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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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말하는 교회는 사실 천주교(로마교회)로 부터 개혁한 교회로 개신교라고 한다. 로마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나온 거였지만 요즘의 한국의 개신 교회들은 더 심한 타락의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다. 별반 차이가 안 난다고 해도 되겠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 개신교 안에서 수십 년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외침이 끊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교회 개혁은 목사 개혁이라고 외치는 분당에 잘 나가는 목사가 인기를 얻은 것도 교회 개혁을 외쳤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돈 앞에 목사들은 변해 갔고 돈 밖에 모르는 목사는 대형 교회 성도들이 만들어 냈다.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면서 말이다.

 예수님은 나그네에게 잘해라고 가르쳤는데 목사들은 "목사에게 잘해야 복 받는다"는 미신을 교회에 심었다. 그래서 아직도 일부 노인들이나 중직자 중에는 그 가르침대로 목사는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기도 한다.

 조금 젊은 세대는 찬양이 신앙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찬양에 집중한다. 하지만 찬양은 신앙이 아니라 신앙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일뿐이다.

 악단이 있는 찬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밴드(악단)가 없는 찬양이 진짜 찬양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기도보다 쉬운 것이 찬양이라 선택한 거라면 잘했다 해야 할지 잘못했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말썽꾸러기를 찾고 싶으면 새벽기도에 나와서 보면 된다.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를 찾으면 된다. 그중에 사탄이 있다.

 아니 기도하는데 왜 사탄이냐고 할 거다. 주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뜻을 이루려 하고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자가 사탄이다. 베드로가 칭찬받고 바로 예수님에게 사탄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개신교의 개혁은 불행하게도 나쁜 목사로부터, 악단 찬양으로부터, 성공을 위한 새벽 기도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 게 개신교도들이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19가 이 모든 걸 해 내고 있다. 일부 교회 목사와 성도는 이것이 방역이 아니라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벌써 만 1년째 코로나 19로 제대로 된 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도 불가능해 보인다. 전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프로테스탄트 교회인 개신교회의 일부가 이탈과 비 협조적인 모습을 모임으로 해서 국민들로부터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이런 짓을 하려고 모이는 게 교회냐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또 일부 정치적인 목사들은 반정부 활동에 교인들을 동원하는 짓을 교파를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자기주장을 했다. 결과는 처참한 정도의 확진자로 돌아왔다. 대유행의 시기에 교회들은 꼭 집단 감염을 일으킨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이게 종교냐는 말을 듣지만 이들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하나님도 특별히 벌주시지 않는 것 같았다. 

 성경의 한 구절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편 1편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는 불행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될 거다. 반대로 이야기하니 성경이 어려워 보이는 거다. 

 기독교의 이탈자인 목사들이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들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였다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일 거다. 

 기독교 목사들이 탈 교회화를 막기 위해 무단히 애를 쓰고 있는 사이 교인들은 실시간 교회 방송이 편해지고 있고 여유로와 지고 있다. 회의도 비대면으로 하니 너무 편하고 예배도 실시간 교회 방송으로 하니 너무 편한 거다. 꾸미고 외출 준비해서 시간 들여오고 갈 필요가 없어진 거다.  

 사실 이 비대면 방송 기술은 오래전부터 가능했던 거였다. 실시간 교회 방송은  오래전부터 대형 교회들만 해오던 거였다면 이젠 작은 교회서도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회의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많은 교인들은 불편한 대면 예배보다 편리한 실시간 방송 예배를 선호한다. 

 이것에는 악단 찬양도 같이 망해가고 있는 거다. 방역은 찬양대를 서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벽기도도 몰락을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실 코로나 19가 아니였어도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는 참여 숫자가 점점 감소하여 없어질 위기에 있었다. 

 저녁예배의 오후 예배 후퇴도 많은 교회가 저녁 예배를 포기하고 주일의 오후 예배로 빨리 모든 예배를 마치고 있다.

 5일 근무제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많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일성수라는 절대적인 주장이 한자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주일예배가 꼭 현장에 나와서 드리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고 선포하는 목회자들이 많아졌다.

 이 말은 많은 성도들이 주일성수는 옛것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주일을 넘어서는 예배가 수요예배나 금요 철야나 기도회 또는 새벽기도회였다면 이젠 일요일이 주의 날이 아니라 모든 요일이 주의 날로 확대되어 간다고 보면 맞는 것 같다.

 삶이 예배다. 원래 기독교는 삶이 예배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원래 믿는 사람은 직장에 가서도 예배고, 집에 가서도 예배여야 했던 것을 이분화해서 직장에서는 직장인 , 집에서는 일반 시민, 주일만 교인이 되어 버렸다.  

 옛날 교회는 교회에 종을 달아 쳐서 예배를 알렸다고 한다. 초종은 시작 30분 전에 재종은 시작할 때 쳐서 시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존재를 알라고 믿는 자들에게는 예배를 알렸다.

 지금은 실시간 예배 문자가 교인들에게 10분 전에 배달됩니다. 그리고 녹화된 예배 영상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시간 참여를 꼭 하려 하지도 않는다.

  코로나 19 이후라는 말을 사용하기 이젠 힘들어진 것 같다.

 많은 전문가가 예견한 대로 코로나 19 종식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냥 인류와 함께 가야 하는 질병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몇 년 후 아니 내년이라도 교회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어색함일 것 같다.

 모여서 특별한 게 없다면 이젠 더욱 안 보일 거다.

 모임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더욱 이탈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비대면과 대면을 혼합한 기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꼭 모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게 성도들의 저항을 당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교회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은 곳이 학교이고 소상공인들이다.

 요즘 보면 교회가 엄청나게 혼자 피해를 본 것 같은 착각에 사로 잡혀서 사람들의 신음에 응답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대면 예배 때문에 문 닫은 교회가 보일지 몰라도 교회는 절대 문을 닫지 않았다.  교회 방송으로 이미 전환 준비가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회는 호들갑은 떨 필요는 없는 거다. 


이 글을 다 쓰고 멋진 동영상을 발견해서 여기에 링크를 걸어 놓았다 

예배당 믿음에서 탈예배당 믿음 시대라는 걸 인정하는 게 매우 어려운 한국교회라면 아래 동영상을 잘 들어보기 바란다.

youtu.be/NMNbygO0z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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