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rch

의심 없이 믿어야 하는 기독교, 예수교, 한국교회

Didy Leader 2024. 10. 3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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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타 왕따 따돌림 업무 배제등은 요즘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한다. 이것은 범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도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권력이 있는 목사, 장로다. 

 특히 담임목사는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이 사람의 말에 순종한다. 그게 틀리건 맞건 말이다. 아마도 기업의 회장들도 비슷한 위치에서 일할 것이다. 아니 구멍가게 사장만 되어도 자기가 잘났다고 남은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할 것이다.

 인간이 원래 이렇게 못돼 먹은 게 정상이다. 그러니 목사에게서도 못되 먹은 모습이 보이는 것은 정상이다. 그걸 교인들은 자꾸 까먹는다. 왜 장로들이 목사들과 싸우냐 하면 목사가 못돼먹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손해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사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목사가 지랄 같아서 싸우는 것이다. 이걸 교인들이 모른다. 그래서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면서 자랑하면서 다닌다. 예배 시간에 보이는 모습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그런데 뭔 착각을 하는 것인지 교인들의 뇌는 고장 난 것이 틀림없다. 목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리면 그럴 리가 없어한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진실을 말해주어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심리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목사를 놓고 교회가 양분되고 갈라지고 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이다. 의심은 나쁜 것이라고 의문을 품지 말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교회는 타락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항상 의심하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경을 읽어보면 의심하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의심하는 사람을 향하여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고 있는데 의심하니 그렇게 말하는게 당연하다. 사람은 의문과 의심하는 것이 정상이다. 왜냐하면 미래를 모르고 확실한 것을 알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롭거나 신기한 경험을 하거나 믿기 힘든 일을 만나면 의심한다

 의심 많은 도마 이야기 때문에 여러분도 혼란 스러울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걸 아는 도마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걸 어찌 믿을 수 있겠냔 말이다. 그래서 도마는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못 믿게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도마에게 손을 넣어보고 믿으라고 하시면서 한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다"고 하신 말씀 때문에 의심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있는데 그건 이 사건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한 제자 도마는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못믿겠다고 한 후 여드레가 지나서 모두 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시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말씀 때문에  목사들이 모든 것에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세뇌하거나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는 목사는 그냥 믿으라고 한다. 그게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그들이 의심과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면 답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마치 시험범위를 벗어난 문제집 같기 때문일 것이다. 특수한 상황을 모든 것에 적용하는 것을 일반화의 오류라고 한다. 

뇌가 고장난 기독인
 이렇게 세뇌되고 학습된 기독인들은 사실 뇌가 고장 난 광신도에 불과하다.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인지 못하면 안 된다.

 의심에 반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배제해거나 제거하는 것과 관용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배제는 극단적인 단체에서 사용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방법이고 관용은 의심을 허용해 주고 같이 고민하여 만약 의심이 잘못된 것이라면 가르쳐서 알려주고 안내해 주며 의심이 왜 잘못된 것이었는지 증명하고 의심했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적인 연구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의심과 의문을 해소해 주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의심은 나쁜 것이니 생각하지 말라고 하거나 죄악시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은 첫번째 반응으로 배제하거나 제거하거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의심은 죄로 취급하여 안정과 유대감을 형성하고 철홍성을 쌓는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의심하지 말라부터 마치 의심은 죄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자세히 앞뒤 문맥을 따라 읽으면 의심하는 사람에게 강권하여하는 말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게 많은 증인과 증거가 있는데 못 믿겠다니 의심을 왜 하는데  의심하지 마" 이런 투의 말이라는 것이다. 

사실 유대교가 예수님을 배제하고 제거한 이유도 기존의 질서와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배제의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유대교와 예수교는 공존해 왔었다. 그리고 결국 AD 70년경에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분리되었다. 

분명한 사실은 교회가 앞으로도 의심과 의문을 수용하지 않고 대답을 연구하고 분석하지 않고 일시적인 안정과 유대감만 따라간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힘까지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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