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과 그 유지 비결
성령 충만하라는 말은 뭔 뜻일까?
교회에서는 성령 충만하면 다 해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령 충만한 상태를 뭘 말하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성령 충만한 상태를 단어적으로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이신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배받고 그의 능력으로 채워지는 것을 말한다. 성령은 영이시므로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이며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고 그의 삶을 사는 것이며 그의 인격과 성품이 삶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참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할 것이다.
성령 충만 하려면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간구하고 복종하고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한 번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와 감사와 복종의 영으로 넘치는 삶이다. 알 것 같은데 돌아서면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간구(기도), 복종(순종), 교제(대화)하는 게 성숙한 기독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의 교인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사실 평생을 예수 믿고 교회다니면서 성령충만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가짜로 그런척 하는 사람은 몇명 보았지만 목사도 장로도 안수집사도 권사도 집사도 성령충만함이 없었다. 교회를 대충다녀서 그런거라고 할지 모르겠다.아니다 난 교회에 아주 깊숙히 들어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가 성령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기도를 해서 성령 충만함을 받는다고 말해 줄 뿐이다. 그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방언에 대한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다 방언 은사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오순절의 방언은 각 나라의 말을 했다는 말이다. 모두 갈릴리 사람인데 외국어로 말했다는 것이다. 조금은 다르지만 한국교회에서 말하는 방언은 알 수 없는 소리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도 어느 날 방언이 터지면 성령 충만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조금 지나면 느낌이 없다. 결국 성령 충만이 떨어졌다고 판단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성령충만이 기도로 구하는 것이라면 수십 년이 걸리거나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그냥 죽을 수도 있으니 성령충만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기도는 성령 충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령 충만이 기도 많이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기도 해야 한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기도를 성령 충만의 도구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다.
기도는 그냥 작은 일에도 주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성찰과 회개를 하나님께 알리는 대화이다. 식사 기도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음식에 감사하고 음식을 통한 건강을 구한다. 기도란 하나님이 항상 도우시는 분임을 알고 믿고 아뢰는 것이다. 이걸 아는 것이다. 청구서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욕망을 내려 놓지 못한 기도는 드리는 게 아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해 나갈 것이고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교제가 유지되는 상태인 것이다.
성령 충만의 유지
아직도 성령 충만한 상태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기도를 요즘 안 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더해야지 하는데 그게 아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 걸 말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관계가 좋아지려면 상대의 말을 존중해 주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줄 때인 것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행동과 언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체크하는 게 먼저다. 그중에 기도가 있다면 기도를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 안 해서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불 순종을 알아야 회개를 할 수 있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개를 통해 용서를 받았다면 나도 남들을 잘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용서는 받고 남은 용서 못하고 미워하면 이기적인 인간만 될 뿐이고 못된 기독인이 될 뿐이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는 언행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이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자신이 더 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태를 추구하면 하나님과 오히려 멀어진다.
남들 눈에는 교회에 열심인 것처럼 보이고 성령 충만한 것처럼 보이고 부러워하겠지만 실상은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욕심이 마음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자신의 열심만이 성령 충만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열심히 떨어졌다 올라갔다 하는 것이다. 이 욕심은 지나치면 비 정상적인 것을 추구하고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어느 유명한 설교자를 따라다니거나 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신앙인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간단하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욕심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가 항상 살펴보자 그게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비법이고 비결이다. 멀어지고 있다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 된다. 욕심은 없는지 선을 행하는지 그게 자연스럽지 않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고 있으니 돌이켜서 욕심을 버리고 선을 행하자. 그럼 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된다. 성령충만이 정신 이상자처럼 뭘 해도 웃고 기쁘고 좋고 즐거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자.
어떤사람과 관계를 좋게 하려면 그 사람에게 맞추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으려면 그분이 싫어하는 일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그분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하는 것이다.
즉 마음이 어디에 있냐는 말이다. 감정적으로 사랑하는 단계도 있겠지만 이성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노력을 성령충만한 상태라고 보면 맞다. 열정적인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 꾸준하고 성실한 모습도 사랑이라는 걸 아는 것처럼 성령충만은 그런 것이다.
성령충만한 사람에게서 성령의 열매가 보이는 거이다. 성령의 열매는 성경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가르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아홉 가지 특징을 의미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이 아홉 가지 열매는 다음과 같다.
사랑 (사랑) :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헌신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희락 (기쁨) : 상황에 관계없이 성령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이다.
화평 (평화) :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더불어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누리는 것이다.
오래 참음 (인내) :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쉽게 분노하지 않고 견디는 능력이다.
자비 (친절) :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동정심을 베푸는 마음이다.
양선 (선함) :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충성 (신실함) :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성실함을 의미한다.
온유 (겸손) :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다.
절제 (자기 통제) :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이 열매들은 개별적인 특징이 아니라,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성령의 성품을 보여준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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