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적 부흥을 말하는 목사 / 복음
오늘 주일 아침 설교는 부흥에 대한 설교다. 사도행전의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숫적 부흥으로 인해 구제에서 빠지는 사람들 때문에 불만과 오해가 생겼고 그로 인해 집사들을 세워 해결하고 사도들은 말씀에 힘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목사는 "나는 잘하고 있고 교회가 부흥되고 있는데 그에 따른 불편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문제가 문제로 안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바쁜 줄 아냐고 부연 설명을 했다. 이번주만 해도 8개의 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출장을 3일 다녀오고 장례까지 두건이나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8개의 설교 준비를 하는데 이 정도면 부흥이 안되어도 내 탓이 아니지만 부흥을 하고 있고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고 자랑질을 하더니 좀 교회에 불편한 일이 생겨도 이해를 해 달라는 것이다.
"항상 나는 옳다"라는 태도를 가진 목사다. 그래서 은혜가 없는 사람이다.
이 목사는 성과를 위해서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 입장에서 숫적 부흥을 외치며 자기는 아주 바쁘지만 말씀을 잘 준비해서 설교하니 교인 수가 눌고 있는데 성도들이 좀 받쳐주면 안 되냐는 마음이 보인 것이다.
딱히 틀린 건 없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의 저 인격은 뭔가 싶다. 자랑질에 우쭐과 비아냥까지 말이다.
나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디서나 주변 사람들을 달달 볶아내고 주어 짜야한다. 충성된 사람들을 소모전을 치르고 지치면 죽도록 충성해야지 하면서 결국 무능력자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희생을 강요하는 헌신은 그래서 나쁜 것이 된다. 자연스럽지 않고 억지로 의욕으로 뭔가를 이루어야지 하는 것은 믿음의 태도는 아니다. 그냥 선을 가장한 욕심에 불과하다. 선을 행하는데 사탄이 틈을 탄 것 이상도 이하도 안된다.
마음의 부흥을 원하는 성도 / 성화
성도의 수가 늘어나고 그걸 부흥이라고 한다면 세월이 좀 지나면 새로 들어온 성도들도 기존 교인이 되고 숫자의 부흥보다 마음의 부흥을 원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 결국 숫적 부흥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평양 대부흥은 회개로부터 시작되었다. 기독인의 회개는 빛과 같은 것이었다. 어둠은 물러가고 교회는 정화되었고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왔다.
복음과 성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는 성화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성화는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태도와 과정이다. 그래서 한쪽으로는 복음이 전해져서 새로운 성도들이 교회에 오고 기존 성도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한 애를 써야 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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