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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회

부끄러움을 아는 성도 , 부끄러움을 아는 교회

by 야야곰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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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이기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어 보이는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기주의에 대해서 오늘 이야기 해 볼까 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까지 침투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까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수오라고 한다. 수오지심 :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앞서 말한 것 처럼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자존심까지 팔아서라도 버티는 직장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틈도 착한 마음을 가졌다 바보 소리나 들을께 뻔해서 악하고 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부끄러움으 아는 것이 정상인데 부끄러움을 모르고 착한것이 정상인데 착함을 모르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고 그 가운데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며 좋은 대접을 받고 승진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을 지켜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바보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너무 남을 배려하면 부모는 걱정한다.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지 왜 남을 먼저 배려하냐고 말이다. "이기적으로 살아야지" 라고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성경에 누가 억지로 5리를 가자고 오면 10리를 같이 가주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교회의 목사 조차도 그렇게 안한다. 바쁜데 계산해 보는 것이다. 부목사나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면서 왜 이런사람 바로 나에게 들어오게 하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는 로마가 통치하는 사회였고 로마 군인이 5리를 짐을 지게 하고 명령하면 따라야 했던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5리가 아니라 10리(3.2km)를 짐을 대신 지고 동행하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불공정한 상황 속에서도 적극적인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손해 볼 일에 앞장서라는 말이된다

 

 "아니 제가 바쁘거든요" "제가 이런일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러지 말라는 말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 시켜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교회 목사도 따르지 않을 것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을 안 따른다면 그 목사는 예수의 제자가 아닐 것이다. 목사라는 직분은 유지하게지만 참 성도도 못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다는 것은, 교회 다닌 다는 것은 이득이 전혀 없는 삶을 살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기도하면 다 응답해 주시니 부자되라고 해서 왔는데 알고 보니 속은 것이다. 부자는 커녕 내 돈까지 교회에 내라고 하고 예수님은 말도 안돼는 실천을 요구하신다.

 

그럼 다 도망가야 하는데 왜 교회를 계속 다니냐 안 지켜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다. 왜냐 다 그렇게 안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주일에 예배 드리고 의무헌금만 잘하면 믿음 좋은 사람으로 칭찬해준다. 새벽기도까지 나오면 아주 좋은 믿음이라고 인정 받기 쉽다. 그래서 이걸 이용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건 심각한 수준이다.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인데 예수의 제자는 아닌 것이다. 종교인으로 예배 드리고 기도하고 헌금 잘내면 아주 잘했어요 칭찬해주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하나님도 칭찬하실까 의문이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의 제자로 살지 않는다는 사실말이다. 나만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안수집사도, 집사도, 성도도 모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야 정상인데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뻔뻔하게 잘 살고 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손가락질 하는 것일지 모른다. 가르침을 받아으나 가르침대로 안 살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교회를 이젠 세상이 걱정해 주어야 하니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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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연자맷돌의 의미

성경에서 연자맷돌은 주로 가혹한 형벌 또는 심판을 상징하는 강력한 비유로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마태복음 18장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또한 마가복음 9:42, 누가복음 17:2에도 나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나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실족하게 하는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를 강조하시면서 사용하신 비유이다. 연자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진다는 것은 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장 극심하고 확실한 죽음을 의미했다. 이는 타인을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시사다.

연자맷돌의 상징적 의미

  • 가장 큰 죄에 대한 극심한 형벌 : 어린아이나 약한 믿음을 가진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는 곧 그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벌이 가장 무거운 형벌임을 나타낸다.
  • 회복 불가능한 파멸 : 연자맷돌의 무게 때문에 바다에 가라앉으면 절대 살아날 수 없듯이, 이러한 죄를 지은 자가 받을 심판이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 단호한 경고: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을 만한 죽음을 비유로 사용하시면서, 성도들에게 다른 이들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주신 것이다.

이처럼 연자맷돌은 고대 사회의 중요한 도구였지만, 성경에서는 특별히 윤리적, 영적인 책임감을 강조하고, 타인의 믿음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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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5장 41절에 나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내용 중 하나로, 다음과 같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mile)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십 리(miles)를 동행하라." (마태복음 5:41)

 

 이 말씀의 의미

이 말씀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넘어, 다음과 같은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 앞선 구절들(마태복음 5:38-40)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도 주라"는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는 복수심을 버리고 사랑으로 반응하라는 메시지이다.
  • 희생과 섬김의 자세 : 억지로 강요된 상황에서도 기꺼이 더 나아가는 것은 자기 희생과 타인을 위한 섬김의 정신을 보여준다.
  • 하나님 나라의 가치 : 세상의 방식과는 다른,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는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초월적인 사랑: 단순히 의무적인 수준을 넘어, 상대방의 필요를 헤아리고 자발적으로 베푸는 초월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라"는 말씀은 우리가 불공정한 상황이나 강요된 상황에 처할지라도, 미움이나 복수심 대신 적극적인 사랑과 섬김, 희생의 자세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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