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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회

기독교는 시작부터 박해 받았다. 조선에서는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

by 야야곰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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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는 시작부터 로마로 부터 박해 받았다. 그리고 조선에서도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기독인이 죽어야했다. 그러나 1882년 한미수교가 이루어지고 선교사들이 외교 라인을 통해들어와  예배를 드리면서 병원과 학교 설립하기도 했다.  

 

 수년 후가 되어서야 외교관 신분으로 알렌이 선교사 신분을 숨기고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국립)을 운영할 수 있었다. 같은 기간에  개신교 감리교와 장로회 선교사가  1885년 아펜젤러(감리교)와 언더우드(장로교) 목사가 부활절에 조선 땅에 도착했다. 

 

* 1885년 4월  알렌 선교사는 국립 광혜원(서영식 병원) 운영,
* 1885년 8월에  아펜젤러 감리교 목사는 사저(집)에서 영어 교육을 시작, 1886년 6월 정식으로 학교를 열었고 1887년 2월 고종으로 부터 배재학당(중등교육) 이름을 하사 받았다. 또한 사저에서 드리던 주일예배에서는 1885년 10월에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 1886년 5월 아펜젤러와 함께 동역하던 스크랜튼 감리교 목사는 여성교육을 시작, 1887년 고종으로주터 이화학당(중등교육) 이름을 하사받았다. 1887년에는 시병원을 세우고 무료진료를 하였다.

 

 이 당시 직접적인 선교가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기독교 개신교 선교사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우며 사저(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10여년이 지난 1897년 미국 감리회로 부터 지원을 받아 현재의 정동제일교회의 벧엘예배당을 건축 봉헌할 수 있었다. 
 
 조선은 이렇게 서양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동길은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는 근대화의 물결이 요동치는 곳으로 변해갔다. 최초의 한국 교회는 감리교 아펜젤러 선교사와 장로교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교회로 알고 있겠지만 이미 그전에 황해도에 소래교회가 자생적으로 있었다.


 

최초의 개신교 교회

소래교회 또는 솔내교회(松川-, 송천교회)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생한 개신교 교회로 1883년 황해도 장연군에 세워졌다.하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존하는 교회로 제일 오래된 교회는 감리교의 정동제일교회와 장로교의 새문안 교회이다.  
  

개신교의 선교 계몽 활동

 조선의 문호개방 이후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의 개신교가 전파되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선교의 방법으로 서양식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였다. 알렌(Allen, Horace Newton, 1858~1932)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을 세웠고(1885), 감리회 목사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1902)는 배재학당을 설립하였으며(1885), 스크랜튼(Scranton, Mary 1832~1909년)은 이화학당(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을 열었고(1886), 장로회 목사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rant, 1859~1916)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를 세워(1915) 교육계몽 활동을 펼쳤다. 이어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한국인을 억압하고 수탈할 때에 다수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입장에 섰으며, 교육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개신교 선교사들의 이와 같은 활동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종교로만이 아니라 근대적인 서양 문명으로 보게 하였다. 그러한 인식을 배경으로 기독교는 한국 사회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기독교는 아직도 구박 받고 있다. 

기독교의 한 부류인 개신교는 개혁교회로 천주교가 유럽에서 타락한 모습을 보일때 하나님 제대로 믿자고 종교개혁을 통해 나타난 기독교 분파가 개신교회다. 그런데 이들의 교회가 중앙집권적인 천주교(칼토릭교회)에 비해서 자유분방하다 보니 결국 통제가 불가능 한 구조로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약 700년의 세월을 지났고 한국에 개신교회가 들어온지는 1885년 이후 140년전이다. 

그리고 오늘날 신천지와 구원파 그리고 통일교 같은 이단부터 전광훈과 손현보 같은 이상한 목사들이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기독교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지고 있다. 

 

근대화를 이끌던 개신교회가 이젠 국민이 걱정하는 교회가 되었다.  
  국민의 걱정 거리가 된 교회를 어떻게 일끌어 갈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많다. 시대의 정신으로 교회의 선포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천주교가 되었다. 천주교는 진보에서 서서 목소리를 낼때  개신교는 극우에 서서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천주교 처럼 진보에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개신교회가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종교로서 사회를 이끄는 선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반대로 하니 걱정거리가 되고 상식 밖에 행동을 하는 이상한 종교단체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