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는 성경에 등장하는 세리장의 이름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세리장으로 일하면서 동족의 돈을 착취하여 부자가 되었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로부터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이렇게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많은 추측이 들어간 설명이다. 정확하게는 모른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누가복음 제19장 [예수와 삭개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성경에서 정확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삭개오가 여리고에 있었다는 것과 이름이 삭개오이고 직업이 세리장이고 부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키가 작고 예수님이 보고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하고 네 집에 유하겠다고 말하니 즉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
예수를 만난 삭개오는 즉시 행동으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돌려주겠다고 선언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삭개오라는 이름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히브리어로는 자카이라고 한다.
로마제국에서 세리는 세금을 걷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동족에게는 반역자나 부패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특히 세리장의 직책은 그 지역 내 세금 징수 사업을 총괄하는 높은 지위였다. 이러한 위치는 그가 부를 쌓는데 많은 기회를 제공받았을 것이라는 게 확실하다. 그래서 더욱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미움을 받던 삭개오가 갑자기 예수님이 자기 집에서 유하겠다고 하니 소유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은 네 곱절로 돌려주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삭개오는 부유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소외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해도 갑작스러운 삭개오의 이런 발언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다. 선언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현대 기독교에서는 삭개오는 인기 있는 인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단 키가 작아서 인물이 없다.
GPT에게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니 보통키에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주었다. 아주 건방진 삭개오를 그려주었다.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삭개오라는 인물에 대해서 몇 시간 생각을 하다 보니 그가 자신이 말한 것을 실천했을까 의문이 든다. 실천했다면 아마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아마도 교회의 중직자가 되었을 것이고 계속 그의 이름대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우린 삭개오가 그렇게 살다 죽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회심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인 된 우리에게 찾아오셨을 때 우리는 어떤 고백을 했는가? 가진 돈은 없으니 교회에 봉사하겠다고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니 그 교회를 섬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교회에서도 봉사하라고 자꾸 독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 봉사가 아니라 이웃 봉사이다.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고 섬기고 내 것을 내어주라는 것이다. 언제 그런 말을 하셨냐고 따질 뿐들을 위해서 성경책 맨 뒤에 십계명 아래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7~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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