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8장) -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측은지심과 하나님의 사랑
위의 말씀은 성경에 있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의 죄가 믿지 않았을까? 모세의 율법으로 돌로 쳐서 죽이는 게 당연한 형벌이었다. 그리고 예수님도 돌로 치라고 하셨다. 단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셨다.
죄인조차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성경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찍이 동양철학에서도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맹자다. 맹자는 기원전 372년에 태어나 기원전 299년 83세를 살다 간 노나라의 정치가이며 사상가였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맹자의 측은지심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다. 먼저 측은지심은 맹자가 생각한 인간의 선천적 도덕적 능력에 대한 4가지에서 나온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다. 한 문장으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타인을 불쌍히 여기며 부끄러움을 알며 양보하고 선악을 판별하는 마음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도덕적 능력이며 마음이라는 말이다.
맹자의 말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측은하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이 실천 가능해지는 순간이 측은한 마음이 생길 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도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 중에도 "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다.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군사들을 보면서 하신 말이다. 겉옷을 제비 뽑고 예수님을 조롱하던 로마 병사들 말이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말이다.
기독교의 사랑의 종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기도해 주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 44절 말씀) 이게 일반인에게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나를 못살게 하고 구박하고 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원수는 사랑까지 하라는 명령이다.
실제로 평생 수양을 해도 이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도전해 보길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은 긍휼 한 사랑이다. 긍휼이란 단어는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된다. 이렇게 시작하면 원수인 사람은 미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도 사람은 불쌍히 여기고 측은하게 여겨서 미워하지 않는데 기독인들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못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인에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양이 덜된 하급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종교인이라고 취급당하는 걸 어색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종교에서 말하는 이타적 사랑은 어느 종교에도 다 있는 이야기이고 강령( 綱領 )이다. 그러니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요? 나를 구박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요? 하고 미리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그것만 해도 당신은 좀 괜찮은 기독인이 될 것이다.
교회 안에 중직자인 목사와 장로가 자주 싸운다 하지만 이들이 어느 수준에 있다면 의견 차이가 감정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측은지심, 불쌍히 여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긴 것처럼 서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다면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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