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가 만나는 과정
서울은 생각보다 넓은 지역이다. 거기에 수도권까지 합하면 더 넓다. 서울 끝에서 끝까지 거리도 한 시간이 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 정도 잡아야 하는 거리다. 세월이 지나다 보니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친구 한번 만나려면 사실 쉽지 않은 결심을 해야 할 때도 많다. 이렇게 멀리 살면서 차 한 대로 여행을 가자고 했으니 모이는 것도 일이 되고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30년 지기 남자들끼리 수다를 떨겠다고 1박 2일 여행 계획을 잡았다. 상상만 해도 재미없는 모임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에게도 참여를 권유해 보았지만 모두 대답은 "NO"였다. 당연한 결과다. 무모한 계획이었지만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새벽잠이 없었기에 가장 북쪽에 사는 내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모이기로 한 장소는 서울도 아니고 그 아래 수도권 남쪽이다. 나는 새벽 6시에 출발했고 셋이 모두 모여 목적지로 출발은 8시 40분에 한 것 같다. 일단 행선지는 평창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강릉 안목해변에 가기로 했다. 숙소까지 가는데 3시간, 짐 풀고 점심을 먹으니 1시, 강릉 안목해변에 도착하니 2시가 넘었다. 강릉까지 바로 갔어도 3~5시간 걸린다고 나왔는데 중간에 평창군 봉평의 숙소를 갔다 점심까지 먹었으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공평하게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가면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것이다. 세상은 항상 수학적으로 공평한 게 아니고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 것이니 그걸 이해한다면 불공평은 불만의 대상이 아니다.
자동차 여행
1일 생활권이라고 하면서도 여행을 해보면 어딜 가던지 집에서 출발해서 5시간은 넘어야 여행지에 도착하는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이번처럼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니 불필요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서 하루종일 차만 타고 다닌 것 같다. 기동력이 좋은 점이라면 불필요한 이동은 나쁜 점이다. 다음날도 그냥 서울로 복귀하면 되었는데 또 차를 몰고 오대산의 월정사 갔다 다시 서울로 향해야 했다.
여행은 누구와 가냐가 중요하다
누구와 함께한 여행이냐에 따라 보는 것도 먹는 것도 달라지는 것 같다. 가족이나 아내와 여행을 할 때는 사진을 잘 찍어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번처럼 남자들과 여행을 하면 사진은 포기해야 한다.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만 찍으려 하면 도망가기 바쁘다. 살면서 여러 번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왔었지만 이번처럼 빨리 통과해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사진을 안 찍었기 때문이다.
함께 경험한 것도 기억이 다르다.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 식사 시간에 한우를 숯불에 익히면서 식사 후 불멍(모닥불) 준비까지 했다. 역시 남자들만 모여서 그런지 말이 거칠어지기만 했다. 각자 대장 노릇만 하려 하니 졸병이 없는 대장 3명이 명령만 한다. 거기에 장난이 너무 심해서 진실된 이야기나 깊은 이야기는 불가능했다. 젊은 날의 추억의 노래를 들으면서 과거를 이야기했다. 같이 경험한 추억이 각자의 기억이 조금씩 다르다.
각자의 생활방식이 다르다
오는 길에 느낀 것은 여행은 엉망이었고 각자의 경험으로 고집만 피웠지만 친구의 오늘 이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전하는 친구는 앞뒤에 앉은 친구의 잔소리를 스테레오로 들어야 했다. 다 스스로 베스트 드라이버이기 때문이다. 운전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하면서 말이다.
잘 달리던 영동 고속도로에서 멀지 않은 앞 쪽에서 두 차의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서 났으니 바로 정체를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멀리에서 정체를 당한 사람은 아마도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그것도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나가면서 보니 두 운전자 나와서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을 계획대로 살아온 친구는 없다.
한 가지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살아온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난 아직은 보지 못했다. 당연히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없으니 계획을 세워도 대략적으로 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계속 수정했을 것이다.
이번 여행도 위태위태하면서 처음 세운 계획대로 100% 진행된 잘된 여행이었지만 한 친구는 이런 계획을 미리 짜 놓고 갔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다. 그 한 친구는 자기 차는 자동차 보험이 안된다고 하면서 운전을 도맡아 했는데 서울에 도착해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데 하는 말이 "사실 이틀 누구나 운전할 수 있게 보험을 들어 놓았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 친구도 다 계획이 있었던 거다. 플랜 A, 플랜 B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우린 두 가지나 세 가지의 계획을 세우고 상황에 따라 계획을 변경하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게 몸에 배어있는 습관을 가진 나이인 것이다.
대략적인 계획에 두세 가지의 변수에 따른 계획까지 있었으니 모두 대장 노릇하면서 잘 안 돌아갈 것 같았지만 자연스럽게 여행이 착착 진행되었던 것이다. 겉모습은 각자가 명령만 하는 것 같았지만 "시켜서 안되면 내가 한다"는 솔선수범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오래된 친구들끼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그리고 남성들이라면 여행을 통해 친구들을 더 잘 알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적극 추천한다. 카페에서나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오래된 친구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거라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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