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rch

대한민국에 한 못된 목사가 있었다.

Didy Leader 2022. 12. 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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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편 만들기  

 그는 언제나 자신은 정의에 편의고 하나님 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술수와 교묘함으로 윗사람에게는 아부와 아양까지 부르며 사람을 홀려 나갔다. 남을 헌 담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그리고 아랫사람에게는  자기편을 만들기 위해 회유했고 말을 안 들으면 협박하거나 음해와 거짓으로 내쫓으려 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추어내어서 자기를 올리는 일을 하면서 필요한 사람에게는 쓸개까지 줄 것처럼 행동했다.  

 

 교회 안에서 이 못된 목사는 악한 기운으로 자기편을 만들었다. 실제로는 자기편 아니면 다 적이다. 자기에게 승복하지 않으면  다 적으로 삼았다.  조직폭력배처럼,  일진처럼 조직원 하나를 건드리면 다 덤벼 들었다. 교역자 및 직원까지 자기의 세력을 넓힐 수 있는 모든 곳에 힘을 과시해 나갔다. 

 

결국 모든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는 지옥을 맛보아야 했다. 

 

적이 될만한 사람 제거하기 

 동료 목사와 사이가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선배를 무시하고 아랫사람은 가스 라이팅을 하면서 담임목사에게 아부하면서 권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대항하는 무리는 다 정의의 편이 아니고 하나님 편이 아니라는 마귀론을 피면서 사실 이건 이단 짓인데 이런 짓을 자연스럽게 하였고 반성은 모른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악한 기운으로 술수로 사람을 모았기 때문이다.  출발이 잘못된 것을 모르니 왜 이게 나쁜지 이 인간은 죽어도 모를 것이다. 

 

 교회는 거짓과 불의에 너무 연약했다. 같이 싸울 수도 없고 공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담임목사까지도 그 못된 목사에게 하염없이 약한 상태이니 하소연할 곳이 없는 무적인 거다

 

도망가듯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하는데 오래갈 수는 없는 거다. 담임목사가 은퇴를 하니 힘을 잃기 시작했고 도망갈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오랜 세월이다. 6년이 넘게 그런 짓을 하다 결국 떠났다. 오래 참고 견딘 사람들은 허탈했다. 그리고 부목사에서 다른 교회 담임목사로 떠나갔다. 성공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인성이 별로라서 설교에 사랑이 없다. 그러니 뭐 말소리만 들린다. 설교로는 은혜를 끼칠 수 없으니 술수만 가득한 담임목사가 되어서 부목사에게 설교 원고 써오게 하고 검토하고 수정해서 설교할 것이 뻔하다. 

 담임목사로 가서도 똑같은 행동을 할 거다 하지만 위치가 변했으니 왕 같은 담임목사에게 도전하는 것은 반역자이니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제거될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쓰면 되니까 일은 쉬울 거다. 그 대신 같은 목사들로부터 존경받는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날 것이다. 왜냐하면 교계는 아주 작아서 금방 알려진다. 

 

배우처럼 연기하는 목사

 교회 안에도 이런 일이 있는데 하물며 일반 직장에서야 오죽할까 싶다. 그런 세상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것을 위로받겠다고 교회에 나오는데 여러분이 보는 좋은 시설의 좋은 차 타고 다니는 목사들에게서는 연기하는 목회자만 보일 것이다. 

 

  우린 연극에 주인공이 목사인 무대를 매주 마주한다면 슬픔이다.  자신은 충성과 헌신을 대우받아가면서 하면서 일반 성도에게는 손해 보면서 하라고 말하는 목사 말이다. 한 푼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목사가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게 잘못되었냐? 아니다. 우리가 뭔가 잘못된 구조 속에 있다는 걸 말하는 거다. 

 

선한 목자 같은 목사

 선한 기운으로 자기편을 만들 줄 모르면 악한 기운으로 자기편을 만들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선한 목자는 예수님의 뜻한다. 목사들은  그분을 따라 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변질되었다면 돌아와야 하는 거다. 선함으로 인정받을 수 없어서 포기한 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연기와 술수와 이간질과 자기편 만들기 밖에 없는 거다. 내부의 적은 제거 해 가면서 갖가지 못된 짓을 다 해가며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 뻔하다. 교회에서 목사를 내보내기는 요즘 법이 강화되어서 노동자 내보내는 것보다 1000배는 더 힘들다.  그만큼 권한이 막강하고 탄탄한 철 밥통이다. 그러니 모두 선한 영향력보다는 악한 영향력으로 버티기를 하는 게 쉽다는 걸 신학생 때부터 배우게 되는 거다. 

 

 "나쁜 놈이 잘되는 건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사실 목사는 이미 믿음을 잃은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만 안 했을 뿐 그의 삶에는 하나님은 안 계신 거다. 아니 하나님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온갖 짓을 다하는 거다.  그러다 교단에서 제명당하기 직전  탈퇴하고 목사 타이틀을 자기 맘대로 유지하고 자기를 추종하는 교인들을 계속 속이면서 이단으로 가는 거다.  그 첫출발이 자기편 만들기다. 꼭 기억하자 자기 맘에 드는 사람을 구분하고 편 가르기 하는 짓을 시작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목사가 아니라 악마인 거다.     

 

불의한 목사가 떠나가면서 드는 생각

 나는 평신도 사역자로서 이곳에 있다. 못된 목사에게 굴복하지 않은 대가는 커서 못된 짓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에 허망하게 서 있다. 왜 이렇게 고난은 쉽게 오는 것일까? 또 바른 길을 가는 곳에 방해는 왜 이렇게 많은가 싶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실 이런 문제를 많이 만나게 된다. 정부는 항상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자신의 편에서 정의이지 진정한 정의는 한 번도 없는 게 인간 세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자기가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모두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그래서 정의라는 것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나에게 유익이 없더라도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망할지라도 그길로 가겠다고 할때 정의가 되는거다. 정의를 해서 내가 잘되고 내가 이득이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다.  

 

오늘 또  참 재미없는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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