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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자리에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가 있다면

디디대장 2022. 10. 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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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작은 직장인 우리 사무실은 어찌하다 보니 여직원 두 명이 한 명은 나르시시스트이고 한 명은 에코이스트인데 이 두 사람을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작은 사무실이라 분리할 공간도 없다.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

 하나는 공감 능력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이고 하나는 공감 능력이 뛰어난 에코이스트다. 물과 기름 같은 사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기적이고 못된 인간이지만 항상 승리한다. 이유는 에코이스트는 남을 무시할 수 없는 성격이고 한쪽은 철저히 이용하고 무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결 정도로 보면 된다. 물론 악은 나르시시스트이고 선은 에코이스트이다. 

 

 사실 나르시시스트는 옆자리에 앉아 있지 않아도  에코이스트를 찾아다닌다. 이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인데 나르시시스트는 이용하기 위해 에코이스트를 좋아하고 에코이스트는 나르시시스트의 자신감에 끌린다. 나르시시스트는 남에게 잘 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고 에코이스트는 열성팬이 된다. 나르시시스트가 불평할 때 에코이스트는 연민이 작동된다. 또한 나르시시스트는 에코이스트를 방어해 준다. 에코이스트는 옆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면 기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에코이스트의 약점을 이용한다. 에코이스트는 상대의 장점을 보려고만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가스 라이팅에 능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방치와 학대로 가스 라이팅의 순서로 사람을 조정한다. 에코이스트가 가스 라이팅을 감지하고 멀리하려 하면 선물과 약속으로 자신의 편이 되게 만든다.  

 하지만 에코이스트는 최대한 나르시시스트 격리해야 하는데 무시하고 대화하지 말라고 해도 에코이스트는 남을 잠시라도 무시할 수 없는 성격인 게 문제다. 멀리 거리를 주고 유지하라고 하니 어떻게 사람에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이 둘은 정말 문제다. 피해를 보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에코이스트의 너무 높은 공감 능력도 문제가 된다.  

 

 이들은 둘 다 치료되는 개선되는 성격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다.  문제인 이유는  나르시시스트는 절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도 불가능하다.

 

또 협력해서 일하는 대부분의 일에서 소외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무상으로도 문제고 대인관계도 문제다. 교만과 고집, 독설, 나쁜 태도 등 계속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불행하게도 고칠 수 없는 장애다.  

 

 나르시시스트와 강아지 

 나르시시스트를 피할 수 없다면 1. 거리두기, 2. 대화하지 않기 3.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 나르시시스트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이 방법은 강아지 서열 올리지 않게 하는 방법과 같은 방법이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가 오두방정을 떨면서 반기더라도 가족들과 인사를 다 한 후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 지쳐서 자기 집에 갔을 때 흥분이 가라앉았을 때 불러서 인사해 준다.

 집에 들어왔을 때 다른 가족이 있다면 찾아다니면서 인사 후  맨 마지막에 강아지를 쳐다보고 인사해야 한다. 그전까지는 철저하게 무시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친한 척하면 기가 살아서 " 니들 대장이 나를 이뻐하는 것 봤지" 하면서 나머지 가족을 무시한다. 아무리 이쁜 얼굴을 하고 귀엽게 애교를 부린다 해도 나중에 받아주고 칭찬해 줘도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다른 가족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서열을 지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인사 순서이다. 

 

 그러니 주변이 나르시시스트가 있다면 키우는 강아지 정도로 생각하면 맞다. 정말 비슷하다. 교만하고 인정받으려고 별짓을 다한다. 대화 불가능 지시를 하면 말을 못 알아듣고 이들이 하는 대답은 예상할 수 없는 황당한 답변을 하고 멍멍 짖는다. 이때 화를 내면 안 된다. 왜냐하면 멍멍 짖는데 사람이 대꾸하면 웃긴 일이 된다.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해도 일반인들은 그래도 고쳐서 써야지 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나르시시스트는 더욱더 고쳐 쓸 수 없는 사람이다. 가능성이 제로이다. 희망도 없다. 

 

 왜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가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당해 보면 안다.

 

 모든 사람은 개인주의 성향이 있고 교만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상인인 일반인은 나도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한다. 자신을 의심해 보고 자기반성을 하는 사람은 절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다. 


 이 글을 쓸때 에코이스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직위가 올라가니 나르시시스트였다는 걸 알았다. 다시 말해 공감능력이 있는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이다. 훈련된 가짜 공감능력 말이다. 직위가 낮을 때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러브파밍이나 가스라이팅이 불가능했던 거였고 업무가 없어서 그냥 놀면서 월급 받고 다녀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거다. 놀면서 월급 받는 걸 좋아하고 있던 나르시시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임이 나가고 후임이 들어오니 그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난 이제 세상이 무섭다. 아니 인간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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