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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회

교회가 진보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극우의 소리를 내는 이유

by 야야곰 2024.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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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교회 노인들이 또 교회 안에서 태극기 짓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체 영화 관람이다. 조조나 노인할인을 이용하고 회비를 사용해서 무료로 공짜 관람을 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도 몇달 안 남았고 얼마전 12.12 사태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 흥행이 부러웠나 보다.

건국전쟁은 故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란다. 

 

 난 영화를 통해 정치 참여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싫다. 그리고 단체 관람이 싫다. 또 노인 문화가 싫다. 또 기독교의 대표주자 개신교 사회참여 방법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본다.

 

 개신교는 먼저 교회를 개혁해야 할것이 더 시급해 보이는데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개스럽다. 프로테스탄트인 개신교는 계속 개혁하지 않으면 형식화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교회 중심의 개신교는 목사에게 교회를 맡겨놓고 대충살다 교회 다니면 안된다. 성경을 바르게 가리치고 실천하기 위해 신학자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절대 만능에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못난 사람을 먼저 만나주신다. 그런데 20살도 되기 전에 "하나님 밖에 없어요" 라고 고백할 정도로 삶이 처절한 사람이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된다면 그가 나중에 괴물로 성장할 것은 뻔한 일이 된다. 천재여서 빨리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래서 그런가 교회의 장로와 목사는 맨날 싸우고 교회의 총회에서도 맨날 싸움만한다. 이들은 의견 차이를 좁힐 줄을 모르고 자신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들이라고 보면 맞다. 이러니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느게 아니가 싶다. 

사회를 걱정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가 걱정하는 교회가 된 것은 목사의 잘못이 제일 크고 그 다음은 성도들일 것이다. 
교회의 정치 참여 정말 신중해야 할 부분이다. 훈련되지 않고 맹목적인 추종으로 극우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천주교가 진보에서 소리를 내는 것에 비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천주교는 진보의 소리를 내고 개신교는 극우의 소리를 낸다. 

 

 특정 종교 집단 전체를 하나의 정치적 성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경향과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의 소리가 전체를 대변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쪽 목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천주교가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사회교리의 영향: 천주교는 사회 정의와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는 사회교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강조하며, 불평등 해소와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적인 가치와 맞닿아 있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변화: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천주교는 현대 사회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추구하며,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참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 교황청의 입장: 최근 교황청은 기후 변화, 빈곤, 인권 등 국제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교황청의 입장이 한국 천주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역사적 경험: 한국 천주교는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진보적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개신교 일각에서 극우적 목소리가 나오는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근본주의적 신앙: 일부 개신교 교단 및 단체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근본주의적 신앙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고수하고, 사회 변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반공주의와 냉전 시대의 영향: 한국 개신교는 한국전쟁 이후 강한 반공주의 성향을 보여왔다. 냉전 시대의 이러한 경험은 현재까지도 일부 교회의 보수적, 극우적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수 있다.
  • 성장 지상주의와 물질주의: 일부 개신교는 양적 성장과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둔감함이나 보수적인 경제관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정치적 보수 세력과의 연대: 일부 개신교 단체는 특정 정치적 보수 세력과 연대하여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관을 사회에 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극우적인 목소리가 표출될 수 있다.
  • 소수 교회의 영향력: 극우적 목소리를 내는 일부 교회나 목사의 영향력이 과대하게 부각되어 개신교 전체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천주교 내부에도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존재하며, 모든 개신교 교회가 극우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개신교 교인과 단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종교 집단 전체를 획일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각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 현상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