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Church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바울과 다윗의 물 맷돌

디디대장 2023. 10. 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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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설교를 듣고 고객을 끄덕이며 내가 달라질까? ② 
오늘 주일 설교 말씀은 귀한 초청 목사님이 오셔서 조용하게 일침을 가하시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잘 설명해 주셨다. 오래된 교회에 오셔서 전통과 역사가 중요하지만 그걸 가지고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 빌립보서 3장 12~16절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바울의 고백은 많이 들어본 설교 말씀이다. 대단한 바울 사도이지만 항상 겸손하면서도 진지한 바울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바울

 오늘 설교는 이 말씀을 배경으로 말씀에 찔림이 있도록 잘 설명해 주셨다.  전국에 개신교 교회 중 100년이 넘은 교회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 그런 교회들이 모두 역사를 자랑하지만 실상은 발전을 할 수 없는 구조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특히 개신교 교회의 설교를 계속 듣다 보면 제 자리로 돌아오기만 하는 느낌이다. 거의 모든 교회가 이런 형편일 것이다.  주중에 죄짓고 주일에 회개하고 또 그다음 주에 죄짓고 또 회개하고 전혀 발전이 없는 시스템이다.  앞으로 쭉쭉 나가지를 못한다. 목사는 성도의 문제라고 말하겠지만 책임은 교회의 리더인 목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단계적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만 설정해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늘 본문을 놓고도 너무나 훌륭한 설교이고 설명을 잘해주고 찔림이 있는 말씀이었지만 아쉬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실천할 수 있는가 문제에서 말이다. 마음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말이다. 생각을 바꾸었다고 몸이 움직일까 싶다. 그럼 또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다윗의 물 맷돌에 대한 이야기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년 다윗이 거인 장군을 물 맷돌로 죽인 사건에서 다윗이 그 물 맷돌을 비단에 싸서 잘 보관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물 맷돌로 쳐다만 보고 옛 승리에 도취되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또다시 다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는 말이다.  일본 목사가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니 100년이 넘는 교회들이 옛 명성과 과거에 갇혀서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본문은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 배우자는 것이다. 뒤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달려가자는 것이다. 참으로 감명 깊은 이야기였고 교훈이었다.

하지만 성도는 매주 제 자리 돌아오는 삶을 산다.

 예배를 마치면서 마지막 개인 기도를 할 때 난 이런 생각이 마음에 머물렸다. 오늘도 감동을 받고 그래 나도 바울과 같이 달려가자 마음먹었다면 내 삶이 변할까?  나는 바울도 아니고 이젠 늙었는데 달려가라고 한다고 달려갈 수 있을까? 빨리 걷기만 해도 숨이 차는데 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신앙생활이 이어진다면 우린 언제나 제 자리일 것이다. 그래서 설교가 감동적이라고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해 목사의 수준에 따라서 나의 수준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좋은 설교가 시간 낭비가 되지 않고 믿음을 단단하게 잡아 줄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설교 하나에 왔다 갔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내 수준이 학교나 직장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삶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것은 환경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수준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름을 바꾸기 전 사울일 때도 이미 수준이 있던 사람이다. 그러니 예수 믿고 사도로 살아가면서도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본이 튼튼한 사람이었기에 예수 믿고도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활동과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노력하자 그리스도의 삶을 제대로 살겠다고 결심했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효율적이지 않고 교회 안에서만 신자로 살도록 잘못된 목사의 지도를 받고 수십 년을 신앙생활했다면 더욱 각성해야 한다. 신앙 상담을 목사나 전도사에게 받고 말로 알려주는 것은 달콤하고 쉽다. 좋은 설교를 듣고 끄덕이는 것도 아주 효과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항상 발전 없는 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일만 반복할 뿐이다.


 스스로 책을 읽고 노력하는 것은 느리지만 강력한 것이다. 성경을 읽고 신앙 서적을 읽고 느린 독서를 통해 바른 신앙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설교를 따라다니거나 목사를 따라다녀서는 매번 같은 자리에 돌아와서 후회만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설교를 듣고 감명받고 교훈을 얻으려 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 감동적인 삶을 살고 교훈을 가지고 교회에 와야 하고 그런 성도들 앞에서 한없이 낮아진 목사가 설교를 해야 하는데 현실은 또 엉망진창으로 살다 온 교인들을 살 달래가면서 교회는 꼭 나오셔야 하고 헌금과 봉사 잘하셔야 합니다.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삶에 목사가 부끄러워야 제대로 된 교회지 목사 혼자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겠다고 애쓰고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인 다운 향기가 없고 썩은 내만 풍기다가 교회에 온다면 교회는 향기가 아니라 썩은 내만 나는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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