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이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앉아만 있는 게 아니라 행정 사무를 보고 여러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건물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예전에 이발사였다. 내가 반백의 머리로 다니는 게 영 마음이 안 들었는지 오늘은 자신이 염색하다 남은 염색약을 들고 나타났다. 사실 저를 보고 여기저기서 왜 염색도 안 하고 다니냐는 소리를 이분이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날 도와주겠다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염색을 하자고 설득을 한다. "자~ 5분이면 되니까" 빨리 해결해 준다는 거다. 거의 사정하듯 말해서 나이도 많은 분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마침 사무실에 아무도 없고 한가한 시간대였다. "좋아요. 남아서 버리는 거라면 하죠" 하고 염색을 했다. 잠시 후 내 백발이 연탄처럼 색 까맣게 변했다.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인사말로 젊어 보인다 잘되었다 별의 별소리를 다 들었다. 하지만 전 기분이 별로였다.
며칠 아니 몇 주 후면 다시 흰머리가 자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걸 감추기 위해 또 염색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꼭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다른 거짓말들이 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를 속이지 말자. 늙어가는 걸 즐기자가 제 삶의 자세였는데 .., 그리고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염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들어 보인다는 이유로 말이다.
지혜로움은 머리에서 나오는데..,
저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지혜로움은 흰머리에서 나오는 것인데 하고 우겨 보았지만 반 강제적으로 염색을 해야 했다.
아~ 내 지혜를 어제 다 도둑맞는 것이라고 엄살을 떨어야 했다. 삼손의 심정을 알겠다. 머리에서 힘이 나오는데..,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남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거라고 생가하는 내가 역지고 웃기는 말이라는 것 잘 알고 있다.
어제 퇴근길 슈퍼 앞에서 아들을 만났다. 순간 아들이 아빠를 못 알아보고 지나쳐 갔다. 약 10초 후에 아들이 절 알아보았다. 아빠랑 진짜 비슷한 사람이 자기 앞에 서 있어서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을 달랐다. 퇴근 후 한참이 되어서야 "뭔가 달라졌는데.., "라고 말했다. 염색했잖아 하니 그때야 그렇구나 한다.
그리고 보니 젊은 사람들은 외모의 변화를 빨리 아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좀 느리고요. 이건 아마도 겉보다는 속을 보는 지혜가 많아져서 일 것이라고 우기고 싶다.
그래서 지혜는 나이와 상관이 있다라고 우겨 본다. 나이는 흰머리와 주름으로 계급장을 다는 것 같다. 새치가 있는 분들 계급이 남보다 위인 것이라고 우기면서 이 글을 끝낼까 한다.
간혹 이런 생각도 한다. 눈썹까지 희어져라.. 내 도사가 되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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