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Church

화내는 기독인 보셨나요? 성질내는 성도 여러분에게

디디대장 2022. 6. 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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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사랑의 종교로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걸 알려주는 종교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이라는 구원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변을 보시면 약자에게 심하게 화내고 불평하는 신앙인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특히 기대치가 큰 사람인 종교 지도자라는 목사, 전도사의 공식적이지 않은 자리이거나 직원과 같은 약자 또는 자기들끼리 일어나는 인성의 문제들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도 들어 보고 놀라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했을 거다. 

 

사랑을 말하는 종교인이 화를 내는 게 잘못인가?

 '그럼 화를 내면 안 되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화는 감정에서 나온다. 누군가 화를 내게 자꾸 만든다고 주장하며 정당화하겠지만 사실 그건 훈련이 안된 인격체일 뿐이다.

 화를 내지 않고도 불편함을 전하고 시정할 수 있게 말할 수 있다. 단지 급하지 않으면 된다. 당장 이 자리에서 해결하겠다고 쉽게 입을 열 때 생긴다. 꾹 참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훈계할 때도 마찬가지 기술이 필요한 것처럼 직장에서는 더욱 훈계의 기술이 필요하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훈계의 기술이 있으면 화내지 않아도 된다.

 훈계가 가능한 경우를 말하는 거다. 훈계가 안 되는 인간이 있을 때는 화를 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훈계가 가능한 사람에게 화를 낸다고 그건 인품의 문제라고 밖에 볼 수 없어 보인다. 

 

 야고보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않니 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경고했다. (약 3:8) 

다시 말에 말에 신중함을 요구한다. 무조건 줄이기보다는 꼭 필요한 말을 감정까지 전달하지 않고 전달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된다. 

 

 미운 행동을 한 사람을 미워하면 감정이 드러나고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 말은 개인의 감정으로 일을 망치지 않도록 감정을 제어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감정을 제어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종교인이 아니고 기독인이 아니라 해도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잔소리와 대화의 차이

 잔소리와 대화를 구분해야 한다. 잔소리는 감정이 섞여서 보통 나온다. 이것밖에 못하냐 하는 경멸이나 경시가 있는 말이다. 대화는 상대의 의견도 듣고 나의 생각도 전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자기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어린아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이 어린 사람을 함부로 대할 때도 이미 상대를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 윽박지르고 큰소리로 야단쳐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의 실수는 상대에 대한 무시에서 나온다. 

 당연히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을 좋아해 줄 사람은 없다.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 이해해 주면 양반이다. 사실 성질내는걸 욕 안 할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기독인이 욕을 먹는 것도 대부분 행동에 있다기보다는 말에 있다. 말과 태도 이것은 항상 같이 다닌다. 말에서 태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수가 많은 사람은 당연히 말을 수를 줄여야 한다. 과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입을 닫으면 귀가 들린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보다 훌륭한 처세술은 없다. 

 

 탈무드의 교훈에는 사람의 귀가 두 개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를 설명한다. 말하는 것보다 두배를 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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