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곰 생각

용기 있는 자 / 중년과 노년에 필요한 용기

디디대장 2022. 10. 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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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돈이다 보니 사람들은 돈 버는 기술이나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려 하고 그 대가까지도 지불하면서 강연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용기 있는 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용기는 젊은 날 이쁜 아가씨를 보고 용기를 내어서 고백하거나 할 때 쓰고 필요 없는 것이 되었을 거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보니 난 용기가 없었나 보다. 

 

젊은 날에도 없던 용기를 왜 지금 50대 후반에 이야기 하나 하면 그건 지금부터 용기가 필요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용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배운 적이 없어서 용기를 낸다는 말은 없는 뭔가를 힘을 더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찌 되겠지 하는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용기를 내서 하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데 그 정도 뜻이 아니다.  무모한 용맹, 만용과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용기이다. 

 

용기

 두려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고 공자가 말한 것이 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두려움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 두 사람은 기원전 500년과 300년대 사람들이다. 

 

 용기는 무모한 만용과는 다른것으로  알리스토텔레스는 지진이나 큰 파도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거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알지만 용기를 내서 고귀한 일을 선택하고 견뎌내는 것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세워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리더십 이것이 용기 있는 자의 선택이라는 거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50이 안된 나이였으나 그당시 임금의 평균 수명이 47살이었다고 하니 적지 않은 나이였다. 이순신이 용맹한 장군으로 알고 있겠지만 용맹한 장군은 원균이다. 이순신은 용기 있는 장수였다. 두려움을 알고 용기는 내어서 승전을 위해 전략을 세우고 나갔던 장군이었기에 그가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선조 임금의 명령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킨 결과는 백의종군이었던 것도 도의를 알아 그것을 지키려 했던 선비였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용매스럽게 무모하게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알아 지혜롭고 슬기롭게 계획을 세워 앞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충무공 이순신의 용기는 진정한 용기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는 결론이다. 

 

그럼 갑자기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왜 했냐 그 당시 이순신이 노년의 나이였기에 두려움도 알고 지혜로울 수 있었기에 이젠 우리도 인생도 알고 두려움도 알고 삶의 지혜도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어떤 분은 원균은 57살에 죽었는데 그는 무모한 용맹(만용)으로 함선의 일부는 자침 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파손되고  자신은  전사하지 않았냐고 따질지 모르겠다. 그러니 나이가 많다고 지혜롭거나 용기 있지는 않은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나이 들었다고 모두 용기 있는 자가 자동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자동이 아니라면 노력해야 한다. 노년은 두려움이 많은 나이다. 그런데 두려움을 아는 나이이니 만용이 아닌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두렵더라도 진정한 용기는 고귀한 일을 향하여 계획을 잘 세우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헤쳐나가면 되는 거다.  

 

 은퇴자의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다 용기도 없고 두려움만 쌓인다. 그런데 말이다. 새로운 시작을 못할 나이는 아니라는 거다. 실패라는 두려움 때문에 용기를 내애서 앞으로 못나간다면 아마도 아무것도 할수 없을 것이다 

 

 삶은 용기인는 자들의 것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삶의 지혜를 가지고 여기까지 온 자랑스러운 노년이다. 그러니 힘을 내자

 

* 이 글은 은퇴를 앞두고 더 다니면 안되냐고 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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