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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없는 진짜 관계, 그리고 기쁨 없는 종교 생활의 가식에 대하여

by 야야곰 2026. 7. 3.

계산 없는 진짜 관계, 그리고 기쁨 없는 종교 생활의 가식에 대하여

살아가면서 내 안의 가식과 예의를 다 벗어던지고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하며, 때로는 투박하고 직설적인 농담을 주고받아도 상처받거나 삐지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입니다. "돈 아까우니까 굶어라" 같은 거친 말이 오가도 그 안의 악의 없는 진심을 알기에 웃어넘길 수 있는 관계.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유치하게 투닥거려도 결국 돌아서면 아무런 앙금이 남지 않는 관계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비즈니스적 인간관계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마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허물을 지어도 그 본질적인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것처럼, 진짜 관계는 이득과 손실을 따지지 않습니다. 조건 없이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인간관계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이 종교 안에서 이러한 본질을 잃어버린 채, 오히려 계산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타인을 정죄하고 가스라이팅하는 종교적 폭력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위선자, 그들의 실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히 친한 척하며 율법과 규율을 잘 지키는 것을 무슨 훈장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명확합니다. 어떻게든 다른 성도의 약점을 찾아내 지적하고, 비아냥거리며, 자신을 영적 우위에 올려놓고 의스대려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타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는 비판 없는 마음이 바로 참된 믿음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것을 가르쳐주려 했다는 것은 핑계일 뿐, 실제로는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려는 교만이자 더러운 위선에 불과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는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일 성수나 십일조, 교회 봉사 같은 외적인 행위 자체가 곧 구원의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기쁘고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봉사와 헌금은 아름답지만, 의무감에 짓눌려 괴로워하면서 하는 형식적인 종교 행위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매주 교회에 나오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할 바에는, 정말 마음이 힘들고 외로울 때 가끔 찾아오더라도 온전한 평안을 누리는 것이 낫습니다. 내가 슬프고 괴로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 착각하는 종교적 맹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은 영적 폭력이다

내가 즐겁다고 해서 남에게도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종교 안에서도 "일단 억지로라도 시키다 보면 나중에 좋아질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신앙을 강요하는 폭력이 만연합니다.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켰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외부의 강요나 억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확신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기복주의적 신앙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매주 강단에서는 '은혜와 복을 받고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달콤한 보증수표 같은 설교가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삶을 돌아보면, 기도의 응답이라 믿었던 수많은 일들은 그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해결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이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거대한 법칙을 만드신 분이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종하는 분이 아닙니다.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를 나약한 존재로 세뇌해 노예로 삼듯, 하나님은 인간을 가스라이팅하여 조종하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라며 인간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신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은 일부 목사의 잘못된 영적 가스라이팅일 뿐입니다.

 

기복을 넘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신앙

하나님을 마치 내 필요를 채워주는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대하는 바보 같은 믿음에서 가차 없이 돌아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고 복을 주지 않더라도, 그저 그분을 알게 된 것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어야 진짜 신앙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비록 남들 보기에 거지 나사로처럼 초라하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호의호식하며 세상의 부를 누렸던 부자는 음부로 떨어졌고, 부자 집 대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갔던 예수님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젊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성경 구절 중에서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축복의 말씀만 골라 듣고 인정하려는 태도는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믿는 '거래 관계'를 끝내야 합니다. 40년 지기 친구와 계산 없이 삶을 나누듯, 신앙 또한 어떤 보상이나 조건 없이 존재 대 존재로 마주하는 기쁨의 소통이어야 합니다. 내 안의 들보를 먼저 보고, 가식적인 종교 의식 대신 내면의 진실한 평안을 찾는 것만이 위선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국개신교회에서 은혜와 축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목사들의 가스라이팅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적과 기사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이적과 기사(표적)만을 좇거나 그것을 보아야만 믿으려고 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책망하신 대표적인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요한복음 4장 48절

왕의 신하가 죽어가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세대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눈에 보이는 기적에만 집착하고 말씀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의 연약한 믿음을 짚으신 구절입니다.

2. 마태복음 12장 39절 (또는 마태복음 16장 4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을 때 단호하게 나무라신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이적을 구하는 신앙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특징으로 규정하시며, 진정한 표적은 앞으로 있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요나의 표적)뿐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이나 기적적인 체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더욱 가치 있음을 일깨워 주는 대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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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나의 관계

나는 40년 지기 친구와 자주 만나서 대화를 한다. 욕을 해도 거짓말도 해도 되는 사이다. 물론 정말 욕하고 속이고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예의 때문에 할 수 할 수 없었던 말을 직설적이고 솔직한 마음에 있는 말을 할 수 있기에 자주 만나서 대화를 한다.

 

사실 친구의 직설적인 말이 순간적으로 마음이 스크레치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거나 악의가 없는 충고이기 때문에 조금은 듣기에 불편할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수긍할수 밖에 없다.

 

 밥을 먹자고 해서 그러자 할 때도 "돈 아까운데 밥 먹자고 하냐 그냥 굶어라 집에 가서 먹어" "어차피 죽을 것 굶다 죽어, 3끼 다 먹고 죽으면 동물이 가는 지옥 간다" 이렇게 농담을 해도 상처받거나 삐지지 않는다. 삐지면 바보된다. 우리사이에서 기가 죽지 않은 반격의 단어가 더 중요하고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의 게임만 있다 그리고 내가 밀려서 당황해도 상관없고 이겨도 상관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정도 관계를 유지하다 멀어질 계산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것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계산하지 않는 관계 그게 진짜고 사실 계산하고 있다면 이득과 손질을 따지고 있다면 거래관계일 뿐이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 천국 못간다

 간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한 척하면서 규율을 잘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도 되는 줄 알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결국 다른 성도를 지적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정죄하려 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자신을 비교 우위에 놓고 의시대려한다.

 

썩은 내를 풍기는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고 바리새인 같은 위선자들이다.

 

 이런 사람은 천국 못 간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가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이다. 맞다. 예수를 믿었다면 남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증표다.

 

 올바른 것을 가르쳐 주려한 거라고 변명할 것이다. 자기의 신념을 심으려 했을 뿐이고 교만하고 더러운 위선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태도에서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자꾸 다른 성도를 지적하고 싶고 잔소리하고 싶어 진다면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당신이 목사이건 장로이건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눈의 들보를 먼저 빼야 한다.

 

그럼 어떻게 가르치고 치리 하냐고 할 것이다. 잘못된 가르침을 하고 그걸 지키라고 하고 있지 않나 자신을 의심해 보기 바란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불만은 신앙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게 현대인이다. 남을 비난할 시간이 없다 가족에게도 그렇게 하년 안된다. 신앙이 폭력이 되는 가정이 간혹 있다. 특히 목사들은 하나님을 팔아 자신의 신념을 주장하지 마라

 

마태복음 7장 21절 성경 구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를 들면 주일 성수나 심일조 생활 같은 것 말이다. 이걸 신앙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아무도 안 가르쳐 주었는데 이딴게 신앙인줄 알고 주장하는 성도가 참으로 많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다. 이런것 다 안해도 된다. 괜찮다. 힘들고 외로울 때 교회에 오고 싶다면 그때 와도 된다. 가끔 와도 된다. 매주 나오면서 괴로워하고 힘둘어 할 필요 없다. 하나님도 그런 당신을 보고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기쁨으로 주일 성수를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한다면 다 좋다. 괜찮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목사의 설교는 지겹고 봉사하는데 지적만 당하고 헌금 낼 돈도 없다면 하지 말란 말이다. 당신이 슬픈데 하나님이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하는게 이상하지 않은가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을 버려라

 이기적인 인간은 자기가 즐겁고 기쁘다고 남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보 짓을 자주 한다. 이런 병신 같은  신앙생활을 강요한다.

마약쟁이가 마약 권한는 것과 같은 태도로 강요하면 안된다. 내가 좋아한다고 남도 좋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교회 안에 이런 신앙을 가장한 폭력이 참 많다. 일단 강압적으로 하건 강요해서 경험 시키면 나중에 좋아하게 될거라는 병신 같은 이론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믿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었지만 신앙을 지킨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무리 무서워도 가능했던 것이고 남의 강요로 절대 생길수 없는 믿음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손해볼 일이없는 상태로 예수를 믿는다. 아니 손해는 커녕 은혜와 복을 준다고 설교만 주일마다 듣고 안심하고 돌아간다. 잘 될거라는 희망과 하나님이 내 인생을 도와주실거라는 보증수표를 들고 교회 문을 나선다. 일주일에 삶속에서 직장에서 내편에 서서 날 지켜줄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사는게 편할수는 있지만 "정말 그런가"라고 물어 보면 항상도 아니고 가끔일까 하면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일은 시간이 해결해 주면서 없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해고 기도 응답을 받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부분의 일은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으셨지만 해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인간도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데 하나님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만들어 놓고도 남으실 분이시다. 

 

 하나님은 하나하나 조정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르시시트 인격장애자가 사람들을 조정하기 위해서 상대를 나약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고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가지 일도 못할 것 처럼 세뇌시켜 자기 노예로 삼아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그렇게 조정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교회 목사는 여러분은 하등에 가치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가스라이팅을 해 왔을 것이다.

 

 바보 같은 믿음은 스스 노력하지 않아도 요술램프의 지니 요정처럼 하나님이 날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다고 자랑까지 한다. 하나님을 도우심이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하나님은 그런 놀이게 같은 신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지 않아도 난 하나님이 좋아야 한다. 그분을 내가 알게 된것만으로 만족하고 기뻐야 한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남들 보기에는 거지같아도 괜찮아야 한다.

 

 거지 나사로가 늙은 부자 집에서 구걸을 했지만 천국에 가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야기를 예수님이 해주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또 젊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신 말도 알것이다. 

 

예수님의 말을 제발 무시하지 말라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듣고 인정하고 따르겠다고 하지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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