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님의 뜻을 감히 인간이 안다구요

by 야야곰 2026. 6. 21.

하나님의 뜻을 감히 인간이 안다고요?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묻곤 합니다. 내가 어떤 학교에 진학해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혹은 이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지. 그 순간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어 집니다.

​마음이 답답해 목사님을 찾아가 여쭤보면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하실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혹은 성경에 모든 답이 나와 있으니 기도로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시겠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그런 거시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삶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눈앞에 대놓고 따질 수는 없으니, 그저 "네, 잘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떠나 버리곤 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모를까

​주변을 둘러보면 남들은 하나님의 뜻을 척척 잘도 알아서 항상 성공 가도만 달리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나는 매번 그 뜻을 몰라서 헤매고,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하는 것만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 두신 정답지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데, 나에게만 숨기시는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이런 고뇌는 삶의 큰 시련이나 죽을병에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찾아옵니다. 교회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보살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여기에는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있다"며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정이 망하거나 목숨을 잃는 비극이 찾아온다면, 그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좋은 분일까요? 우리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더 큰 뜻이 드러날 것이라며 상처 입은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굳게 믿어보려 애를 씁니다.

​모르는 영역을 하나님의 뜻으로 덮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수록 무언가 이상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가 당장 겪고 있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작 성경에 명확히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과 죽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대한 명제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지금의 내 믿음이 전부 부정당하는 것 같고, 앞으로 살아갈 희망과 꿈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으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그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며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인간은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유약한 존재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전지 하시기에 모든 것을 아실 거라 믿고, 그분이 자녀인 우리를 선하게 돌봐주실 거라 막연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참 그럴싸한 믿음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한 치 앞을 모른 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유약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지나고 나서야' 끼워 맞춰지는 고백들

​따라서 냉정하게 결론을 내려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방식은 늘 한결같습니다. 바로 '지나고 보니, 돌이켜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간증과 신앙의 경험담이 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그 화려한 간증을 듣는 수많은 성도는 '저 사람에게는 늘 하나님의 뜻이 함께했고, 그 뜻에 순종했기 때문에 오늘날 저렇게 성공해서 멋지게 말하고 있구나'라며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지만 전혀 다른 비극적인 결과를 마주한 이들은 또 다르게 주장합니다. 결국 교회의 논리는 "성공하면 하나님의 뜻이고, 실패하면 내 고집과 잘못 때문"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로 흘러갑니다.

​세상과 교회의 기묘한 정반대 공식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고 모순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일이 잘 풀려 성공하면 "내가 잘나서, 내 뜻대로 했다"라고 자랑하고, 일이 틀어져 실패하면 조상 탓이나 남 탓을 하곤 합니다. 성공은 내 공이고 실패는 남 탓이라는 공식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에만 들어오면 이 공식이 정반대로 뒤집힙니다.

 

성공하면 "전부 하나님의 뜻이자 은혜였다"며 겸손히 고개를 숙이지만, 실패하면 "내가 고집을 부려서, 내가 믿음이 부족하고 잘못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며 눈물로 용서를 구합니다.

​성공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면서, 실패의 참담한 굴레는 오롯이 나 혼자 짊어지는 이 현상.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만 유독 스스로에게 이토록 가혹한 논리를 적용하며 마음을 다쳐야 하는 걸까요.

​겉포장된 확신보다 정직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뜻은, 어쩌면 성공한 자들의 사후 확신이나 실패한 자들의 자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눈앞의 결과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룩한 단어를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미리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매 순간마다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틀로 하나님의 뜻을 난도질하기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유약한 인간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막막함 속에서도 묵묵히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짜 믿음의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