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감히 인간이 안다고요?
살아가면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간절히 묻곤 합니다. 내가 어떤 학교에 진학해야 할지,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혹은 이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지. 그 순간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과 뜻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어 집니다.
마음이 답답해 목사님을 찾아가 여쭤보면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하실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혹은 성경에 모든 답이 나와 있으니 기도로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시겠죠.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그런 거시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삶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눈앞에 대놓고 따질 수는 없으니, 그저 "네, 잘 알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떠나 버리곤 합니다.

남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모를까
주변을 둘러보면 남들은 하나님의 뜻을 척척 잘도 알아서 항상 성공 가도만 달리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나는 매번 그 뜻을 몰라서 헤매고,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하는 것만 같아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해 두신 정답지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데, 나에게만 숨기시는 것 같아 서글퍼집니다.
이런 고뇌는 삶의 큰 시련이나 죽을병에 걸린 절박한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찾아옵니다. 교회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라고 가르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보살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 알지 못하지만, 여기에는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있다"며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정이 망하거나 목숨을 잃는 비극이 찾아온다면, 그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좋은 분일까요? 우리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더 큰 뜻이 드러날 것이라며 상처 입은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굳게 믿어보려 애를 씁니다.
모르는 영역을 하나님의 뜻으로 덮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수록 무언가 이상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내가 당장 겪고 있는 구체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정작 성경에 명확히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과 죽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대한 명제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지금의 내 믿음이 전부 부정당하는 것 같고, 앞으로 살아갈 희망과 꿈마저 사라져 버릴 것 같으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그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며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인간은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유약한 존재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전지 하시기에 모든 것을 아실 거라 믿고, 그분이 자녀인 우리를 선하게 돌봐주실 거라 막연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참 그럴싸한 믿음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한 치 앞을 모른 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던 유약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지나고 나서야' 끼워 맞춰지는 고백들
따라서 냉정하게 결론을 내려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말하는 방식은 늘 한결같습니다. 바로 '지나고 보니, 돌이켜 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간증과 신앙의 경험담이 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그 화려한 간증을 듣는 수많은 성도는 '저 사람에게는 늘 하나님의 뜻이 함께했고, 그 뜻에 순종했기 때문에 오늘날 저렇게 성공해서 멋지게 말하고 있구나'라며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들, 하나님의 뜻이라 믿었지만 전혀 다른 비극적인 결과를 마주한 이들은 또 다르게 주장합니다. 결국 교회의 논리는 "성공하면 하나님의 뜻이고, 실패하면 내 고집과 잘못 때문"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로 흘러갑니다.
세상과 교회의 기묘한 정반대 공식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고 모순적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통 일이 잘 풀려 성공하면 "내가 잘나서, 내 뜻대로 했다"라고 자랑하고, 일이 틀어져 실패하면 조상 탓이나 남 탓을 하곤 합니다. 성공은 내 공이고 실패는 남 탓이라는 공식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에만 들어오면 이 공식이 정반대로 뒤집힙니다.
성공하면 "전부 하나님의 뜻이자 은혜였다"며 겸손히 고개를 숙이지만, 실패하면 "내가 고집을 부려서, 내가 믿음이 부족하고 잘못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며 눈물로 용서를 구합니다.
성공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면서, 실패의 참담한 굴레는 오롯이 나 혼자 짊어지는 이 현상.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만 유독 스스로에게 이토록 가혹한 논리를 적용하며 마음을 다쳐야 하는 걸까요.
겉포장된 확신보다 정직한 질문이 필요한 이유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하나님의 뜻은, 어쩌면 성공한 자들의 사후 확신이나 실패한 자들의 자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혹은 눈앞의 결과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룩한 단어를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됩니다.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미리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매 순간마다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적 틀로 하나님의 뜻을 난도질하기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유약한 인간임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막막함 속에서도 묵묵히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짜 믿음의 여정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