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억울함을 하나님이 아시니 사람들의 오해 따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대부분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답답해하고 분해하고 소문의 출발점을 찾아 사람들을 쑤시고 다닐 겁니다. 범인을 찾겠다는 것이죠. 응징하겠다는 것이죠.
뭐 이런 사람을 교회에서는 성령 충만하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못난 사람이라고 대부분 생각할 겁니다. 물론 오해를 풀어야지 당당하다면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해를 풀려는 노력이 너무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피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오해하기로 마음먹거나 미련해서 오해하는 사람을 말 몇 마디로 똑똑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오해를 받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억울한 상황 앞에서 세상의 오해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보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침묵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해를 받아도 괜찮은 믿음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은 억울함에 분해하고 직접 해결을 원한다고 행동한다면 뭔가 미숙하고 철이 안 들어 보일 겁니다.
이런 사람을 믿음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억울함은 언젠가는 풀어 주시자 않겠냐는 믿음, 그게 없다면 엉터리 믿음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예수님도 억울하게 신성모독으로 죽임을 당하셨지만 오해를 풀려고 애를 쓰지도 도망가지도 않은 걸 생각하셔야 합니다. 왜 그분이 능력이 없어서 오해를 풀고 대접받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고, 심지어 신성모독이라는 가장 모욕적이고 억울한 죄목으로 붙잡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자들을 단숨에 물리칠 능력이 있었고, 당장이라도 모든 오해를 완벽하게 풀 수 있는 지혜와 권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거대한 능력으로 잡히시는 것을 피하지 않으셨고, 구차하게 오해를 풀며 처형을 면하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무력해 보이는 침묵과 순종 뒤에는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과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억울한 오해를 받고 당장이라도 내 힘으로 그것을 파헤치고 해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능력이 있으심에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억울함을 스스로 풀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진짜 믿음의 깊이를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