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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rch

헌금이 믿음의 척도(尺度)인가?

by Didy Leader 2007.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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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일이다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위해 헌금자를 전산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있는데 전임전도사 한분이 봉투를 다 보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좋은 태도가 아니여서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서는 다 보는데 뭘 그러냐고 하신다.  만약 정당하게 보고 받는거라면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것이다. 현실적으로 교역자(교구장)에게 이런것이 보고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규칙을 넘고 있는것이였다.  중간에 중지시켰지만 참 이런 태도를 보이는 교역자를 보면 안스럽기까지 하다.


 아쉬움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가면서 헌금금액을 확인하는건 믿음을 보기위해서 란다.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안할수 없었다. 과부의 두렙돈 이야기가 성경에 있으니 말이다.  돈에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마음에 따라 드리는게 헌금인데 이 교역자는 뭘 보고 믿음을 측량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논리라면 믿음이 좋은 사람은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믿음이 적은 사람은 헌금을 적게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믿음이 좋다는건 재물이 많아서 많이 하는 사람이 되버리는것이다. 

 부자는 하나님의 복받은 사람이고 가난한자는 복받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교회 나오면 다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받고 부자가 되야 하니 말이다.  이건 기독교가 아닙니다.  타종교에서 말하는 복인겁니다. 오히려 성경은 부자청년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가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물질의 복을 전혀 안주시는건 아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언 11장 25절) 


 교회에 헌금을 많이하는건 구제와 남을 윤택하는 일에 해당되므로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은 물질의 복만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 마태복음 5장 3~12절을 읽어 보시면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자, 온유한 자, 의를 주리고 목마른자, 마음이 청결한자, 화평케 하는자, 의를 위하여 피박을 받는자에게  복이 있다고 한다.

 그럼 이런분들이 재물을 복을 받느냐  아닙니다.  천국, 위로, 기업, 의, 긍휼히 여김, 하나님을 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그리고  상이 커진다고 하십니다. 참 다양하지요.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일종입니다. 이것이 재물보다 크게 보이는자는 믿음이 있는자일 것이다.


성경의 다른곳도 유심히 읽어 보면  복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시는 복은 재물의 복만이 아니라 더 큰 복인것이다.


 따라서  헌금의 액수가 그사람의 믿음은 아니다. 성경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구제와 남을 위해 또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게 되는거다.  그런데 그 사실 알까 대부분의 교회는 헌금의 1%도 구제하지 못하다 것말이다. 성도 여러분이 교회에 제발 제대로 구제하자고 요구하셔야 한다. 


 가난한 이웃에 무관심한 교회에 하나님이 재물을 주실리 없으니까


 잠언 11장 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라고 이미 써 놓으셨다.

그러니 여러분의 교회에 가난하시다면 구제를 늘리시고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나 지켜보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믿는다는건 그 가르침을 머리로만 알겠다 하는것이 아니라 행하는데 있다. 이 문제는 구원받은 성도의 당연한 삶인것이다. 구원만 받으면 된다 하는 신앙은 이기적인 신앙인거다. 받을것만 받고  안주겠다는 심보인거다. 그런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세상사람들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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