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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잘릴 때 바울은 억울했을까?

디디대장 2024. 4. 1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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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사형

 바울은 목이 잘릴 때 바울은 억울했을까? 사람이 죽임을 당할 때 무슨 생각이 들까? 특히 기독인이라면 말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 주님을 만난 후 예수 듣는 자를 박해하던 사람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되었다. 기독인을 박해하고 죽이던 자가 반대편에 서서 최선을 다하다 생의 마지막에 온 것이다. 사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오늘까지 전해 졌을까?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바울은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과거는 기독인들에게는 원수같은 사람이였고 회심한 후에도 그의 회심은 의심을 받아야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바울이 결국 참수형으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구해주시지 않았다. 원망보다는 과거의 자신의 잘못으로 죽어간 기독인을 생각했을 것 같다. 유대교의 신봉자로 기독인을 박해하던 자신의 죄가 생각 났을 것이다.

 

베드로의 십자가 처형  

반석인 베드로가 십자가 형으로 죽임을 당할때  베드로는 악울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 끔찍한 죽임을 당하게 된 자심울 구해주지 않으시고 왜 죽게 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겠냔 말이다. 요즘 말하는 예수 믿으면 복받고 잘살게 된다는 목사들에 말과 너무 반대되지 않는가 말이다. 배교를 한다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지 않았을까? 죽음 앞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았을까? 

 

나의 고난

예수믿어 천국가고 이생에서는 복받고 승승장구하고 매사 형통하게 해주신다는 믿기만 하면 대박인 기독교 왜 인기가 점점 없어지고 있나? 그리고 내가 고통 받고 있으면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을거니 참고 기다리라고 말을 바꾸는 목사와 전도사님 말이 좀 이상하다고 안 느꼈냐는 말이다.

 

교회에서 왜 바울의  처형과 베드로의 처형을 순교로 미화하면서 예수믿으면 죽는다로 안 가르치고 옛 믿으면 천국가서 영생을 누린다고 가르치냔 말이다. 복주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냔 말이다. 아니 어느 교회에 있냔 말이다. 강남 어느교회에 금수저들 만ㄹ이가는 교회에 있나 싶기도하다.

 

 우리는 복음이 만병통치약 처럼 팔리는 속임수를 미워해야한다. 기복 신앙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부터 믿는자들에게 비팍과 박해뿐이었다. 오늘날에도 그건 여전하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잘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기도하라고 한다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잘될거라는 말은 육이 아니라 영이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될 것이다가 아니라 잘되기를 간구한다이다. 그것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이다. 결과는 모르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대로 살기 

 믿어라 잘해주실 것을 이건 사기다. 정확하게는 잘되기를 바라지만 망해도 주의 뜻이니 순종하라가 맞는 말이다. 망하기를 자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순종한다는 것은 고난과 고통에도 원망과 불평없이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는걸 말한다. 내 원대로 그리아니하실 지라도 감사하는 태도말이다.

 말씀대로 살면 손해보고 힘들어져야한다. 그게 정답이다. 그러니 예수믿고 편해지고 부자가되었다는 사람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믿는 사람 처럼 안 살았다는 말이된다. 그런사람들이 교회에서 장로가 되기 때문에 교회 다니면 복받고 부자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누가 5리를 가자고 하몈 십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는 말씀을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도 조차 안한 것이다. 원수를 위해 축복하라니 한 귀로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씀이 하나도 기억 나지 않게 살다 교회에와서 자기의 유익을 기도하는게 현대 교회의 교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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