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Church

예배참석으로 관리집사와 싸웠다. 하나님은 누구 편일까?

디디대장 2011. 5. 2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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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예배(저녁예배) 사무실로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손님왈 교회 소유건물 세입자인데 열쇠를 달라는것이다. 
매우 급해 보여서  관리집사님을 찾았다. 새로오신 관리집사님은 예배전 10분전 입장 뭔 일이 있건 예배시간에는 일 안한다. 


 
이분의 마음 중심에는 예배참석만이 믿음이라고 생각하는것 같다
. 집사님 안 나오겠다는걸 어렵게 불러내서 열쇠를 달라고 하니 없단다. 예배시간에 왜 불러내냐고 따지기에 바쁘다. 아니 그럼 방송실에 일하는 직원과 봉사자는 일하는건가요 예배 참석하는거냐고 이해시켜 보려고 했다.  예배도 1,2,3부 다 참석하시지 왜 하나만 참석하냐고 하고 싶었지만 그건 하나만 참석해도 된다고 배웠을거니까  말안했다. 



  집사님도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관리집사로 온거죠. 다른 성도처럼  예배참석하라고 관리집사일을 하는거냐고 내 막 뭐라고 했다. (적어도 관리집사님이면 좀 늦게 들어가거나 정각에 들어가고 들어가기전 주변을 살펴서 교인들이 예배 참여에 지장은 없는지 또 급한일이 생길때는 어떻게 처리할것인지 준비태세를 갖추고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국 예배가 다 끝나서야 그것도 맨 늦게 배경음악 나올때 기도하는것 까지 다 하고 나오는거다. 그리고 나와서는 아까 그 세입자에게 주일날 예배시간에 왜 찾냐고 따진다. 나에게 화가 난걸 이젠 믿지 않는 방문자에게 큰소리 치는것이다. 물론 내가 중지시켰다.

 예배가 그리도 중요해서 하나님께 성령과 말씀으로 예배하고 나와서 믿음 없는자와 전쟁이라고 하려는 이 태도는 뭐란 말인가 


 오늘 관지집사님이 볼때 난 아주 사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탄이 움직이는 로봇일것이다.  

 물론 사무일을 보는 나도 자주 예배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불려 나오는 일이 거의 매일 생긴다. 

 오늘은 꼭 온전한 예배 참석을 다짐하지만 매번 상황이 그렇지 못할때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예배로 꼭 믿음을 지키고 성장하는건 아니므로 기꺼이 성도들에게 나의 권리를 포기한다.


 따라서 이럴때는 다른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예배의 생활화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

 불려 내려올때 마다 물론 기분이 좋은건 아니다. 하지만 난 성도들이 사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왜요? 전 왜 참석하기 힘든거죠? 그럼 사람을 하나 더 보내주세요' 이렇게 말한다. 사탄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한사람을 더 붙여주기 전까지는  시간 지키는 예배는 불가능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예배 입니다. 하나님  받으소서 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어느날은 제가 코를 파고 있어도 예배 맞죠? 제가 화를 내고 있어도 예배 맞죠? 라고 하나님께 말한적도 있다.  그리고 주중에는 사무실에 앉아서 이것이  예배 맞죠? 라고 질문했었다.


 30살때 일이다. 수요일 상사에게 저 일찍 퇴근하겠습니다. 했다. 왜? 라고 물어서  저 수요예배 참석하려구요 하니 상사왈 '꼭 그렇게 말해야 겠어 다른 이유로 말해도 되잖아~' 하고 좀 기분 나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허락아닌 허락을 받고 나왔다 그때가 7시 이미 예배는 시작된것이다.  아주 빨리 가도 예배가 끝나는 시간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꼭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집과 반대 방향인 교회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 도착했을때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었고, 교회문은 잠겨 있었고, 전등은 모두 꺼진 상태였다. 

 하지만 난 교회앞에서 하나님과 대화 할수 있었다.  하나님, 저 오늘 수요예배에 참석한것 맞죠? 맞는거죠? 하고 말이다. 물론 하나님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지으시는것 같았다.



 이원론으로 교육된 관리집사님은 예배참석은  시작전 입장 끝난후 탈출 수준이다.  실제로는 내가 찾으려 갔을때 맨뒤에 앉아 있지 않고, 맨앞에 앉아 있어고 신발은 반은 벗고 거의 졸고 있었으면서도 예배 참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분에게 있어 예배는 장소적 공간적 개념인것이다.

 이런 경우 예배에 참석할수 없는 상황이 삶에서 일어나면 믿음을 지킬수 없을까? 걱정스러웠다.
 
 아마도 병원에 입원했다 해도 예배드린다고 탈출할것 같다. 잠시 외출하겠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허락이 필요 없을 것이다.  외출하면 죽는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데 이런 행동에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성수주일이 정말 이런것일까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주일날 교회직원들 쉬야 한다.

 그러면서 집에 돌아 오는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율법주의적 사고가 유대인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고 생각을 좁아지게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경우 점점 규칙을 강화되어야 하고  규칙외에는 너무 자유로워져 악을 행할수도 있게 만들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교회안에서만 천사이고 교회밖에서는 악마같은 행동을 뻔뻔하게 하는 무리가 우리 안에 있는것 같다. 의무를 다했고 교회 밖에서의 삶은  안 배웠으니 자기 맘대로 하면 되는것이다.  겨우 배운건 입소문으로 들은 술먹지 말고, 담배피지 마라는 정도니 한심한 수준인것이다. 이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이 아니다. 겨우 세상에서 술, 담배 안하는게 한국 기독교의 전부라면 너무 억울하고 분한 일이다.

  예배는 말로만 일주일 전부라고 말하고, 헌금은 전 재산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만 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얼마전 어느 설교에서 이런 말을 들은적이 있다. 십의일조가 믿지 않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나요? 나머지 십의구조가 믿는 않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나요? 그러니 십의구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더 연구하고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바른 태도라는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몇번의 예배 시간만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의 삶의 나머지는 사탄의 영역에서 허우적 거리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일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확장해서 때와 장소가 더욱 더 넓어진다면 그것이 모두 예배일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나에게는 예배인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권이 미치는 하나님의 나라 그분을 찬양하는 이 시간이 예배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권은 넓어지고 넓어져서 삶 자체가 예배이고, 삶 자체가 질서이고, 삶 자체가 찬양인것이 되어야 하고 이런 기독인이 많아지면 세상은 절대 우리를 개독교라고 부르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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