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Church

[기독교] 상급을 바라는 삶과 의를 구하는 삶의 차이

디디대장 2012. 4. 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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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하늘 상급(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현대 기독교 그러니까 이를 대표하는 개신 교회에 가면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먼저 한다. 그리고 좀 지나면 교회 봉사해야 한다고 하고 봉사하다 지치면 하늘의  상급(상)이 있다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잘 안 가르쳐준다. 가르쳐 준다 해도 혼란스러워서 곧 단순해지고  까먹는다.  

 하여간 죽도록 충성하며 늙어간다.  늙다 은퇴라도 하면 죽지 않았으니 찾아서 일하라 한다. 교회의 종이 되어야 좋은 신자인 거다. 물론 말은 하나님께 하는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 교회만 섬기라는 식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산는게 행복한 분들도 많다. 이분들은 이 방법이 너무 쉽고 좋다. 그리고 우린 이걸 전파하고 전도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사실 전 국민의 10~20%도 안된다. 

  나도 그렇게 살아온게 아닌가 싶다. 나도 교회 다니는 게 제일 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하늘의 상급(상)이 있냐 없냐를 신학적으로 따지자는게 아니지만 간혹 이  상급(상), 하늘에 쌓아 놓는 금은 보화로만  오해하고 천국에 저축한다고 죽도록 봉사하고 헌금하는 거라면 어찌 보면 뭐 얻어먹기 위해 애교 떠는  강아지 수준밖에 되지 않는 거 아닌가 싶은 거다. 

 예수님도 부자청년에게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하늘의 보화를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이건 또 다른 연구이다. 왜냐하면 천국을 보화로 표현한 구절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전하기를 바라던 이 청년에게 예수님은 그가 이해하기 쉬은 보화로 천국을 표현한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하늘보화는 뭔가 성경에서 말하는  상급(상)이 아닌것 같은 거다. 그런데 교회 안에 한국 전통 무속의 기복신앙과 인과응보적 법칙이 들어와서  내가 이 만큼 했으니 이 만큼 복 받는다는 식이 많은 것 같다.  절대 하나님은 꼭 인과응보적인 건 아닌데 말이다.

 또 이  상급(상)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분들중, 간혹 그 열심 때문에 교회 안에서 조차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들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남에게 강요함을 본다. 이런 분 주변 사람들은 불행하고 이 분만 행복한 경우가 대부분일 거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보고 싶어졌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급(상)이란 은혜나 면류관으로도 표현되고 있고 결국 여러가지로 말하는 은유적 표현이지 않나 싶은 거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 때문인지 몰라도  이렇게 열심을 다하는 분들중 이 상급(상)이 꿈으로 변하여 천국 갔다 온 이야기로 전해진다.  천국가니  내 집은 판잣집이고 다름 사람 집은 으리으리한 집이고 그 집 창고에는 금은보화가 가득 하서 회개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로  상급(상)에 대한 생각이 더욱 변질되지 않았나 싶다. 

 천국 가본 증인까지 생겼으니 틀림없이 이 생에서 잘하면 천국 가서 부자로 살 수 있는 것이 된 거다.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이젠 확정된 이야기가 된 거다.

 천국에도 빈부격차가 있는 사회라는 말이 되건 말건 천국도 지상과 같다면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도 해 본다.  

 성경을 중시한다는 장로교까지도 성경보다 다른 것에 빠져버린 이 상황에서 성경에 뭐라고 쓰여 있냐가 뭐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론도 있고 증인도 있으니 말이다. 누가 반박할 수 있겠나 싶다. 하지만 이젠 상급(상)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은혜와 면류관 또는 의라고도 하는 철학적인 것임을 알아야 할 때가 된 거다. 만약 성경을 번역할 때   상급(상)을 상장으로 표현했다면 아마 물질의  축적 [蓄積] 으로서 오해하지 않았을 것 같다. 

 

(베드로전서 2장)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위의 글은 성경 베드로전서 2장의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위의 말씀은 행실을 선하게 가지고 비난하는 자들까지도 우리의 선한 일을 보고 돌이키게 하고  선을 행하여도 고난을 받을지라도 참고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셨던 일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그럼 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뭇사람을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수준은 상급(상)을 바라보아서 될 수준이 아닌 거다. 
  물론 더 복잡하고 많은 말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뭔 물건을 하늘에 쌓아놓는 물질 축적의 축복을 바라는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물질 축복의 진의를 떠나서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거다. 그것도 교회 안에서 봉사로 얻을수 있는 상급(상)은 절대 아니라는거다. 교회에서 집사, 집에서는 잡사, 회사에서는 종교 인하라는 게 아니라는 거다. 좀 더 설명하자면 상급을 바라는 행위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경쟁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는 사랑이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선을 행하고도 비난받거나 핍박을 당했음에도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거다. 이런 행위의 근간이 상급(상)을 바라는 마음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교회 봉사하다 지치고 지치면 상급을 바라보자고 해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 차원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인 거다. 언제나 어디서나 늘 한결같은 마음 가짐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가치를 하늘의 보화가 아니라 상급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의에 추구하는 기독인일 때 가능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젠 교회 안에서 상급(상)을 받기 위한 행위를 금지되어야 하는거다. 그런걸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그건 주시고 싶은 분이 주시는거다. 하나님께 있는거다. 또 주던 말던 따져서도 안되는 일이다. 꼭 지불해야 하는 댓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알고 있다. 많은 분들이 교회안에서 봉사하면서 상급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선한 마음으로 아낌없이 희생을 한다. 이런 분이 힘들다고 말할 때 위로한다고 하늘에 보화를 말하지 말자는 거다. 이분들이 하는 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한 것이지 하늘의 보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을 넓혀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바라보는 훈련을 더 하자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않겠냐는 거다.  복음 그리고 교회 봉사의 공식에서 벗어나서 복음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고  교회 봉사가 제일 쉽고 익숙한 분들은 그렇지 않은 분들을 공격해서는 안되는 거다. 사실 이건 교회의 구조적 결함에서 오는 거지 절대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교회 봉사를 하다. 상처받고 그만두겠고 말한 분과 이야기한 적 있다. 몇 번 더 독려를 해 보았지만 상처 준 분 때문에 나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말로 한말이 정말 수고하셨고 대단한 분이셨고 잘 견디어 오셨다고 말해주었다. 

 끝까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그만두었다고 그분이 잘못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과 충성과 마음은 위로받아야 하고 칭찬해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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